역시나 끈질겼던 7월호 마감을 마치고
어제 하루 '아무 것도 하지 말기 놀이'를 했다.
청소, 빨래, 분리수거를 하고 (그 행위들은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닌 의미)
깨끗하진 방바닥에 찰싹 늘어붙어 있다가
별안간 저 아래서 불쑥 충동질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뭔.가.하.고.싶.다.
스타 얼라이언스 '한 붓 그리기(세계 일주)' 예약 시스템에 들어가 10만 마일로 할 수 있는 세계일주 코스를 짰다. 프린트해서 책상 앞에 붙여 두었다. 현재 가진 마일은 8만6천. 내년까지 10만 마일은 쌓일 것 같으니, 서른 살 된 기념으로 세계 일주 한번? 이러면서 혼자 뿌듯해 했다.
8월호 기획 회의를 준비하려고, 교보문고 사이트를 뒤적거리다가
별안간 업계 선배들이 과거에 쓴 책들에 꽂혀
이 선배는 몇 년차에 이 책을 썼나, 요런 것들을 따져보았고
스마트폰 관련 뉴스가 많아서 어떻게 우리 아이템으로 가공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뉴 미디어 시대의 컨텐츠'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학교에 가고 싶어져서
이런저런 대학원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요는 '내 것'을 쌓고 싶다는 욕망인 것 같다. 어느 잡지에 소속된 에디터의 것이 아닌, 내 것.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 세가지 욕구는 모두 아주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느나, 내가 해소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장기간 훌쩍 떠나있는 여행은 해본 적이 없어서 늘 꿈꿔 왔었고
내 책 갖기는
계약서 사인까지 하는 등 실현이 될 뻔했다가 건강을 먼저 챙기자는 결심에 접어 두었었고
대학원 역시 2003년에 이 회사 들어오기 직전까지는 고민했던 진로 중 하나니까.

그러고 보면
한번 마음이 동했던 일들은
시도라도 해봐야 그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다.
나름대로 '시도'라는 것에 몰두했던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저런 류의 허기가 없는 걸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진다.

옆자리 후배는
"선배, 이번 마감에 쫑팀(목차, 판권 등 기사 이외의 페이지를 제작하는 일) 하셔서 그래요. 쫑팀이 여간 고된 게 아니잖아요. 쉬고 나면 괜찮으실 거에요" 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나 보다.
이런 식의 심장 벌렁거림은 쉰다고 괜찮아지는 게 아니란 걸.


2010/06/16 12:52 2010/06/16 12:52

#1
타고나길 누군가 '가르치려 드는 것'에 격한 거부감을 가진 탓인지
나부터도 타인에게 내 생각이나 신념을 설득하는 행위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설득하겠다는 것 자체가 몹시 자신만만한 행동처럼 느껴지도 했다.

진보신당에 들어갔던 것도
옳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내 일상을 할애하기 위해서였지
진보신당의 세를 넓혀야 한다는 각오 때문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난 이런 것들을 추구해요. 난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당신의 생각보다는 내 생각이 더 맞지 않나요?"라고 설득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었다.

어쩌면
세력을 만들어가며 남들을 설득하는 일, 그 자체에 그다지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서 혹은 용기내지 못하면서
특정 정당의 당원이 되었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긴 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상황이 오리라 예감도 했다.
그 때가 되면, 천천히, 공을 들여 설득하리라 생각했었다.


#2
오늘 친한 회사사람 6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6월 2일 투표에서 정당투표는 7번 진보신당을 뽑아달라는 내용을 적었다.

그렇게 해야겠다고 선택했다.
자연스럽게 저절로 된 게 아니라
굳이 해야겠다고 결심해서 할 수 있었다.
 
굳이 해야겠다고 이제야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에게 권해도 좋을만한 진짜 괜찮은 물건'이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나에 대한 존중감이 조금 더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에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입당이라는 정치적인 커밍아웃을 했던 것이었는데
이제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 편이 좋아"라고 말할 여유가 아주 조금 생겼달까.
이건 그만큼 내가 스스로를 믿어준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나름대로는
신념을 설득하는 행위를 처음 했던 것이어서
모두 친한 사람들이었음에도 조금 떨렸고, 많이 조심스러웠다.


#3
저녁식사 시간에 한 선배가
"나 노회찬 싫어. 그래서 진보신당 싫어해"라고 운을 떼며 지난 경험담 하나를 들려주었다.
선거홍보문자와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였는데
선배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제 겪은 일이라 그 마음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쨌든 (선배 입장에선 중요했지만, 내가 듣기엔 사소했던) 빈정상하는 사건 하나 때문에
내가 존경하는 한 사람의 의미와 행보, 약속이 싸잡아 비하당하는 걸 듣고 있자니
너무너무 불편하고 못 견디겠어서
지금이 천천히, 공을 들여 설득해야 될 때라고 생각하며
좋게 풀어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니가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내 생각은 변함 없어. 흥' 하고 덮어놓고 배척하는 선배의 마음을 열어낼 현명한 아이디어나 기지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화가 치밀어 올라서 내 마음을 달래는 것조차 벅찼다.
대꾸하기 시작하면 싸울 것 같아서
싸우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듣고 참았다.
그러고 났더니 그 사람 자체에 정이 떨어졌다. 이런 건 싫은데,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덮어놓고 비난하고 싫어하는 건 싫은데, 정이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서
타인을 설득하려고 덤벼드는 건 굉장한 애정(삐끗하면 집착. 어쨌든 상당한 에너지)을 필요로 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신경에 거슬리지 않은 영역에 치워두지 뭐'라며 잘라내는 게 아니라
굳이 내 세계로 포함시키겠다는 의지이니까.

#4
그렇다면
나는
남들을 조금 더 설득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내가 잘 알아서, 혹은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내 세계 안의 그들을 저 구석진 곳에 치워두지 않기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개지려는, 기이하고도 애틋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5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블로그에 들어와서 보니 포스팅을 거의 하지 않은 5월 동안 내 블로그의 방문객은 매일 5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설.득.이라는 것을 해야겠다면
이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가슴을 울리는 멋진 글을 쓰고 싶었지만
능력부족으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멋진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 뜨거운 맛 by 김규항 (한겨레 기고 글)

more..


2010/05/31 23:21 2010/05/31 23:21



내가 읽는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도 진작 사두었다가 이제야 다 읽었다. 사자마자 휘리릭 살펴보고 '경제 개념이 거의 탑재되지 않는 내가 읽기엔 어렵겠다'는 판단에 미뤘었는데, 막상 읽고 보니 쉽고 재미있었다. 수많은 개념과 이론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이해하기 쉬운 우화로 부연설명 해주어서 좋았다. 화법이 거침없고 통쾌해서 지루하지도 않았고.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우파가 저지르는 오류
  1) 자본주의는 자연발생적이다? | 시장은 정부 하기 나름이다 
  2) 인센티브는 중요하다? | 중요하지 않을 때만 빼고
  3) '마찰 없는 평면'의 오류 | 경쟁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4) 세금이 너무 높다? | 정부가 소비자라는 신화
  5)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 국가 경쟁력은 중요하지 않다
  6) 개인 책임이라고? | 우파는 도덕적 해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2부 좌파가 저지르는 오류
  1) 공정 가격의 오류 | 가격을 조절하려는 욕망은 자제해야 한다
  2) “정신병적” 이윤 추구? | 돈 버는 일은 나쁘지 않다
  3) 자본주의는 망하게끔 되어 있다? | 자본주의는 (겉보기와는 달리) 무너질 가망이 없다
  4) 임금을 평등하게 하자? | 어떤 직업은 여러 모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5) 부의 분배 | 왜 자본주의는 자본가를 잘 배출하지 못하는가
  6) 하향평준화 | 평등을 추구하는 방법으로는 적절치 않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자본주의가 영 탐탁치 않고 몹쓸 구석이 많아 보여서였다.
그래서 1부를 읽을 땐 '옳지. 속 시원하다' 신나게 읽었는데, 2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마주하게 됐다.
책이 '자본주의를 의심할 때 필요한 논리'들을 제공해주리라 생각했는데
'자본주의를 의심할 때 흔히 빠지는 오류'도 다루면서 "너도 무식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셈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공정 무역 상품에 대한 비판(그냥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금전적인 원조를 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누군가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기르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필요도 없는 작물을 기르도록 물건 값을 지불하기 때문)
세계화에서 (손해보는 개인은 있어도)손해보는 국가는 없다는 의견.
그리고 빈곤층을 돕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된 정책이 애초의 의도를 배반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 대한 언급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빈곤층을 돕는 게 소용없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정책 설계에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언급이었다.)
그리고 전주영화제에서 본 김동원 감독의 <행당동 사람들 2 : 또 하나의 세상>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로 추앙했던 '협동조합'이 허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기억에 남는다.

결론적으로
"빠르고 간단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에는 해피엔딩이 없다. 세상은 자본주의를 그렇게도 미워하고 의심하지만 자본주의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란 지독히도 어렵다." 라고 말한다.
이 구절이 귓가에서 웅웅대는 이유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이 불합리한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갑갑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던 그 기분,을 들춰냈기 때문이고
또 한가지
저렇게 결론내려 버리는 것이 혹시 '자본주의를 참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 영속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하는 것(옮긴이의 글 중)'은 아닐지 주저주저 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내 의견이 생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다른 관점에서 쓴 책도 필요할 것 같고.
어쨌든
책 읽기에 있어선 끈기력 없는 걸로는 서울에서 두번째 쯤 되는 내가 하룻만에 400페이지를 읽었을만큼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건 확실하다.

2010/05/07 00:37 2010/05/07 00:37

수술 후 3주가 지났는데도 생각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흙길 위에서 털털털털, 부르르부르르, 먼지를 내면서 온 몸으로 시동을 걸려고 노력하는 트럭이 된 심정으로
겨우겨우 요즘 본 것들에 대해 기록한다.
어쩌면 요즘 본 것들이 너무 덩치 큰 이야기들이라 '막힘' 현상들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생각이 술술 풀려나오길 기대하기 참으로 어려운 주제들이니까. 어쨌든.


# 홍형숙 <경계도시><경계도시2>

 

퇴원하자마자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무슨 영화들을 하는지 보려고 블로그에 구경을 갔었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홍형숙 감독이 대전에 내려와 감독과의 대화를 한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고, 기대치도 않았던 행운 덕에 이 영화들과 감독의 생각들을 만났다.
1편을 DAUM에서 다운로드해서 보고 극장에 갔는데, 1편보다는 2편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1편은 송두율 교수 본인에 집중했고, 2편은 송두율 교수라는 존재를 다루는 주변의 방식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변의 방식이 결국은 우리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마음의 발을 뺄 수가 없다. 7년 전 있었던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래서 결국 나를) 들춰내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1시간 가량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정말 많은 이야길 들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감독이 "내 안에는 당연히 없으리라 여겼던 레드콤플렉스가 실제로는 있었다. 그게 강력하게 작용해서 작품의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당시엔 그저 버티고 기록하자는 심정이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스스로 몸 담고 있는 곳의 흐름에서 자신만은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나도 자주 하는 생각인데, 그게 굉장히 허약한 착각이라는 걸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나만 정신 차리고 있으면 된다, 나만 아니면 된다,라고 생각해도 자각이 닿지 않는 틈새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칫솔질 할 때 칫솔모가 잘 닿지 않는 틈새를 닦으려면 조금 더 공들이고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자각이 닿지 않는 틈새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을 들여다볼 때 조금 더 공들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 깨달음.
감독과의 대화를 듣고 나면 그 작품에 대해 뭐라 한마디 쓰기가 참으로 어려워진다는 것. 구석구석 말끔하게 설명을 들으면 내 해석이 자라날 여지가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관객에게 좋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 물론 홍형숙 감독의 이야기 자체는 완전 좋았다. 감독의 이야기가 좋았냐 나빴냐의 차원이 아니라, 영화를 텍스트 삼아 생각을 펼치고픈 욕구가 있는 관객에겐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이 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 김규항 <예수전>

나오자마자 사두었었는데, 읽긴 이제야 읽었다. 기대했던대로 재미있고 의미 깊은 책.
마르코복음(마가복음)에 기록된 인간 예수의 행적과 당시 시대상에 비춰볼 때 그 행동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해주는데, 완전 흥미진진했다. 나를 '한국 교회'에서 멀어지게 했던 거북한 면모들이 예수의 뜻과도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일종의 통쾌함 같은 것도 느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얼마나 예수의 뜻에 동참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특히 바리새이인들에 대한 설명에서 그랬다.
흔히 바리새이인을 위선적이고 못된 '공공의 적'의 대명사라고 생각하는데 당시 이스라엘 인민들에겐 존경을 받았던 계층이 바리새이인이라고 한다.
로마의 지배에 항거하는 것처럼 보이는 엘리트층이라 인민들은 그들을 따르고 그들의 삶에 존경을 표했지만, 바리새이인들은 근본적으로는 그 지배체제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더 나아가 원하지 않았던 것. 지배체제 하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문제점들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것은 멀리 보면 그 지배체제가 무너지는 원인을 사전에 제거해주기 때문에 그 체제를 더 공고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 원리를 통찰할 줄 알았던 예수는 그래서 유독 바리새이인들을 그토록 '갈구었다'는 것.
이 지배체제에 자본주의를 대입해보면, 말로는 자본주의의 해악을 설파해서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서 식견있다는 평을 듣지만 실은 자본주의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고 상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리새이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난 책의 이 지점에서 완전 찔렸다. 어머, 나 바리새이인이었던 거야? 이러면서 뜨끔뜨끔.
자본주의를 고도화시키는 데 상당히 일조하는 업계에서 일한다는 불편감(이전에도 살포시 느끼고 있던)이 또 다시 머리를 들이밀고 올라왔지만, 용기없음으로 주저주저하고 있다.


# 신재식, 김윤성, 장대익 <종교전쟁>

이 책도 읽을려고 사놓았던 건데 회사 다닐 때는 어마어마한 두께(600페이지 정도)에 엄두도 못내다가 이제야 읽었다. 사실 이번 휴가동안 했던 일 중 가장 보람찬 일 Best 3안에 들만한 사건. 내가 이렇게 두꺼운 책(소설도 아닌데!)을 결국 다 읽다니! 이렇게 감격할만큼 평소에 책을 끈기있게 못 읽는다는 얘기지만..어쨌든. ㅎㅎ
이건 뭐, 인상적이었던 것을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책이라서 뭐 어떻게 정리정돈도 할 수가 없다.
다만 이 책이 내게 준 선물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도 있다는 사실이 준 안도감 같은 게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창조론을 믿어야 하는 것 같은 풍토가 장악하고 있지만, 그건 내키지가 않았었다. 성경이 과학 논문도 아닌데 자꾸 거기서 무슨 증거를 찾으려 하고 뭐라도 하나 나타나면 "봐봐. 우리 말이 맞잖아"라며 고것만 파고드는 창조과학이 가진 태도가 싫었다.
그리고 반대로 실질적 증거가 없으면 그것 자체가 폐기되어야 한다고 믿는 과학주의도 내키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삶을, 그리고 정신까지도 한 차원의 이론으로 '일괄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유물론도 이상하게 느껴졌고. 정말 <이기적인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을 쓴 도킨슨의 말처럼 이기적인 유전자니, 밈이니 하는 것들이 전부일까? 그것들이 설명해주는 것이 분명 있겠지만, 그 이론들이 정말 섬세하고 촘촘한 삶과 생각의 결까지도 '온전히' 설명해낼 수 있나?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때 힌트가 된 예시가 있어서, 그리고 이건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옮겨 보자면

"두 분 선생님들께서 승용차가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합시다. "왜 저 차가 움직이고 있지?"하고 물어본다고 하죠. "자동차 바퀴가 구르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은 하나의 수준에서 좋은 대답입니다. "엔진에서 연료가 연소해서 피스톤과 구동축을 움직이기 때문이다."라는 대답 역시 다른 수준에서 동일하게 받아들일 만한 좋은 설명입니다. "철호가 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도 여전히 다른 수준에서 있을 수 있는 대답입니다. 또 다른 수준에서는 "철호가 학교에 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언급한 모든 설명은 그 각각의 수준에서 뜻이 잘 통하며, 어떤 설명 하나로 다른 설명을 대치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설명 하나하나는 서로 모순되거나 경쟁하지 않으면서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이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 설명인지는 맥락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 미리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설명들을 함께 고려할 때, 한 설명만 고려할 때보다 훨씬 더 풍부한 설명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설명의 다원주의는 유물론적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과학적 환원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됩니다."

내 설명은 하나의 수준에서 좋은 대답일 뿐이라는 한계를 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구절이다.


# 존 호트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앞에 발췌한 글은 <종교전쟁>의 공동저자인 호남신학대학교의 신재식 교수가 쓴 부분이었고, 그 글은 존 호트라는 신학자의 의견을 옮긴 부분이었다. 과학이 발전하면 그것에 맞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종교성이 드러날 것이고, 과학과 종교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지닌 신재식 교수의 글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읽게 된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존 호트의 책을 신재식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진화론을 기독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필요 전혀 없다, 신이 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기마음대로 하는 독재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건 신에게 투사해 왔는지도 모르는 전제군주의 이미지다, 오히려 기독교의 신은 자기를 낮추고 사랑의 대상이 오롯한 타자로 존재하길 원하는 신이다, 그렇기에 진화론은 오히려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는 고마운 존재다.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
이 책도 완전 재미있었다.
여러가지가 기억에 남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다윈주의와 유물론을 이퀄(=)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지적. 둘이 이퀄이라고 말하는 순간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이 신념으로서의 과학이 되고, 그건 과학 환원주의라는 이야기다. '발생학적 오류'에 대한 언급도 기억에 남는다. 발생학적 오류는 한 가지 현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면 그 현상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비논리적 오류인데, 책에서 사용한 맥락도 인상적이었지만 일상에서 흔히 빠지는 오류라서 기억해둬야겠다 싶었다.
어쨌든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은 긍정하지만, 그게 신념의 차원으로 넘어오는 순간 반대하는 게 존 호트와 신재식 교수의 입장인데, 아직 깊게 생각해본 것은 아니지만 나하고 잘 맞는(혹은 맞을 것 같은) 생각이다.

아참.
존 호트가 말한 '악'의 개념도 흥미롭고, 자극이 됐다.

"진화하는 우주에는 두 가지 형태의 악이 있다. 무질서라는 악이 있는데, 고통 전쟁 기근 죽음이 그 예이다. 그렇지만 또한 단조로움이라는 악도 있다. 단조로움이라는 악은 어떤 사물이 새로워지고 갱신되는 것이 적절할 때, 그것을 거절하면서 평범한 형태의 질서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움과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질서를 혼란시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새롭고 다른 것을 배제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삶의 둘레에 성벽을 쌓는다. 종교과 신학도 역시 질서의 고요에 너무 집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때때로 단조로움이라는 악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혼돈이라는 악을 무릅쓰고서만 가능하다."


--------------------

요즘의 결론은
거시적시각결핍자로 29년을 살다가
왜 갑자기 저런 거창한 생각들을 다루는 책에 꽂혔는지 나도 어안이 벙벙하다는 것.
앞서 말한 '자각이 닿지 않는 틈새'에서 어떤 움직임이나 작용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불가지론자인 생물학자가 쓴 <믿음의 엔진>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뭐, 어안은 벙벙하지만 재미있으니 됐다.
기록 끝. ㅎㅎ


2010/04/28 16:29 2010/04/28 16:29

궁금한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 영화, 음악을 읽고 보고 듣고 싶어진다.
그것들이 전해주는 '힌트'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겠구나, 하는.
그렇게 어깨너머로 상대방의 취향을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어느새 그 책, 영화,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 뭐랄까, 짜릿하다.
두 세계의 원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움직여서 작게 포개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릴 때 교집합, 여집합 등을 배울 때 보았던 산수 책 속 두 개의 원 그래프처럼.
그러나 그런 '우주적 이벤트'는 자주 벌어지지 않았다.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와 그 음악. 조선일보 시절 이동진 기자의 시네마 레터. 비틀즈. 우디 앨런. 에드워드 호퍼.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
물론 그렇게 어렵고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라서 '우주적 이벤트'인 것이지만.

2주 전에는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산도르 마라이라는 헝가리 작가의 책을 읽게 된 것도 사람 때문이었다.
서늘할 정도로 예리하고 아름다운 구절이 몇군데 있어서 앞에서 말한 그런 기적을 기대했지만, 결론적으론 일어날 듯 일어날 듯 일어나지 않았다.
산도르 마라이의 <결혼의 변화>라는 소설을,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할머니가 "펼쳐들자마자 첫 장부터 빨려들고 말았다"라고 평했다는데..그걸 읽어볼까 싶기도 하고.

====================================================================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불멸의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내 영혼 안에는 인도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 한번은 카페에서 술 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 나는 몇 시간씩 물을 응시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뒤좇을 수 있지만, 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나는 숲가에 서서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에 의혹의 눈으로 꼭 조건을 붙인다. 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임에 휩쓸려 내 인생의 저녁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사랑을 믿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인들과 함께 지낸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인 탓에 하늘을 믿고 땅을 믿는다. 아멘."

"구월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 이 깨지기 쉬운 형상, 세상을 유리로 감싼 듯 모든 것이 가슴 저리게 밝고 온아하다.
지금 구월의 유리 진열장 속에서, 세상이 진정 대가의 걸작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까칠한 잎새들이 제멋대로 늘어진 나무들은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외롭게 빈방을 지키는 술 취한 남자들 같고, 왠지 짜증스럽게 꽃이 만발한 정원은 상여 같다. - 유리"

"아직까지 생명의 탄생을 보지 못한 사람은 삶의 어떤 것, 특정한 것, 학교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것'을 알지 못한다. 생명의 탄생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역학에 대한 안목이 없으며, 생명을 창조하는 신비하고 무서운 공장을 알 수 없다. 생명이 탄생될 때 가동되는 힘, 삶과 죽음의 힘. 그 시간에 어머니와 아이는 맹목적인 본응으로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더듬거린다 -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 순간에 힘이 솟구치면서, 마치 지진처럼 어머니의 몸을 밀고 폭파시킨다. 피와 태반 대신 뜨거운 마그마와 화산재가 자궁에서 흘러나와도 보는 사람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공장을 보았다. 숙연, 아주 숙연해진다. 잠시 후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증인들이 슬며시 방 안을 떠나면, 미켈란젤로가 돌팔이고 뉴턴이 풋내기였다는 느낌이 든다. - 공장, 역학"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기계적으로 그냥 따라 말하지 말고, 이제는 굳게 믿어야 한다. 어느 날 운명이 너를 손으로 건드리리라. 네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른 시각에 다른 의도로. 삶이 너에게 손을 대면, 너의 일상은 불가사의한 일들로 가득 차리라. - 손길"

"자연이 감기에 걸린 듯 대기가 오한에 시달린다. 나무들이 콧물을 흘리고, 젖은 수건으로 감싸듯 안개가 밤의 초원을 덮고 있다. 국화가 예민한 아이들처럼 재채기를 하고, 보리수나무 꽃차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세상이 열과 오한에 시달린다. 아침저녁으로 일 그램의 아스피린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오한"

"'눈이 내린다' 이 두 낱말은 더없이 비밀스러운 기본적인 삶의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너는 행복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그만 놓치고 말았어"라고 이야기하거나 "조국,조국,조국"이라고 세 번 되풀이하여 말하는 듯 하다. 아니면 "기억이 나는가?"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감정에는 대답을 할 수도 없고 분석할 수도 없다. - 눈이 내린다"

"새벽 네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도시가 폭격을 맞았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든 것이 물속에 잠긴 듯, 저녁에 기이한 적막이 도시를 뒤덮었다. 폭격기들도 침묵했다.
저녁 무렵 도시에는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교외의 집 몇 채와 불가사의하게도 폭격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종탑만이 온전했다. 시내 중심가의 유서 깊은 아름다운 옛집들과 대성당은 파괴되었는데, 종탑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종지기는 저녁마다 그랬듯이 138개의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 청동으로 주조한 종을 쳤다. 종소리가 시내 곳곳에 울려 퍼졌다.
종지기는 자신이 맡은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런 행동이 전혀 의미가 없다. 상징도 아니다. 도시가 멸망하면 상징들도 그 의미를 잃는 법이다. 그러나 종소리는 울려 퍼졌고, 폐허 위를 맴돌았다. 부상당한 자와 죽음을 앞둔 자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평상시에 모든 것이 공허하고 무상했으며, 도시의 유일한 의미는 벽이 무너져도 침묵하지 않는 그 소리였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물론 종지기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종지기에게는 월말에 돈을 받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걱정을 하며 이를 악물고 종을 친 것이다. 그러나 새카맣게 그을린 돌 틈 사이에서 종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진 탓에, 도시는 폐허 속에서도 살아있었다.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자, 종을 울리자. - 도시"

"언젠가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엄한 판사가 물을 것이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고통과 실망, 절망 뿐이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오. 당신은 행복한 적도 있었소. 자주는 아니지만 분명 행복한 순간이 있었소. 그 순간을 말해보시오."
뭐라 답변할 것인가? 나는 고개를 떨구고 귀 뒤를 긁으며 당황하여 앞을 응시할 것이다. 그리고 내 대답.
     "맞습니다. 저도 행복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행복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맛이 아직도 혀에 생생하고, 그 향기가 코끝에 스치고, 그 긴장이 신경을 타고 흐릅니다. 그런데 그게 언제였지요? 어린 시절? ......아닙니다. 그다지 즐거운 어린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청소년기 아니면 나이 들어서? 음울한 기억들이 더 강하게 모든 것을 뒤덮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과연 언제 행복했지요? ......이제 알았습니다. 기억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한 순간이었습니다. - 행복"

"네가 사귀었거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과 인생을 추리 소설에서처럼 묘사하라. 그러면 별안간 모두들 수상쩍은 용의자가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조급하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려들고, 의심스러운 물건이 사방에 널려 있으며, 하찮은 것들이 은밀한 의심의 빛을 받아 특이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용의자들"

"문학은 솔직하지 못하게 시건방을 떨며 돈을 경멸한다. 돈이란 막이 오르기 전에 무대 감독이 주인공에게 건네주는 연극의 소도구이고, 무대에서만 사용되며 성대한 공연에서 시시한 역할만을 하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 적어도 사랑이나 죽음에의 공포, 야망이나 조국애만큼 삶을 채우는 돈은 실제로 훨씬 더 미묘한 체험을 가져다준다. 돈과 관련된 일상적인 체험, 즉 이십 펭고의 특별 지출이나 오십 펭고의 특별 수입이 우리 삶에서 빚어내는 극적인 긴장감을 ,사랑이나 야심보다 한층 더 복잡 미묘한 이 감정의 응축을 묘사한 글은 아직까지 없었다. 돈이란 원래 그런 감정의 응축이며, 살다보면 사소하고 평범한 돈에서도 그런 감정의 응축을 자주 볼 수 있다. 팔 펭고 오십의 충격, 이십육 펭고의 행복, 십칠 펭고의 절망을 묘사한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문학은 대부분 극단적인 것, 존재하지 않거나 터무니없이 많은 돈에 대해서만 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터무니없는 많은 것 사이에서 살고 계산하고 느끼고 열광하고 눈물을 흘린다. - 돈"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수그러들거나 사라질 줄 모르고 말로 형용할 수도 없는 이 흥분.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나를 덮쳐서 시험하는 이 중압감과 불안 - 아침이고 저녁이고 글을 쓰기 전의 망설임, 거듭되는 준비와 마음의 각오, 게으름, 담배, 독서, 그리고 혹시 마지막 순간에라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남모르는 은밀한 기대, 게다가 실제로 방해하는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아무리 훈련을 하고 경험을 쌓아도 나아지지 않는 가슴 두근거림! 그러다가 정말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말이 무르익어서 신호가 되고 확정된 표현이 되려 한다. - 시작하기 전에"

"칠월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넘치게 무르익었다. 냉장고 안에서 우유가 응고하고 살구가 상하고 고기가 부패했다. 감정들이 시큼하게 변질되고 사회 구조가 조각나 떨어져나가고 국제 협정이 해체되었다. 보리수나무에 새싹이 돋는가 하면 장미가 시들었다. 사방 천지에서 파멸, 악운이 시큼하게 발효하며 부풀어올랐다. 들판에 널려 있는 시체들은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응시했다. 플랑드르에서는 어느 외로운 농부가 밀짚모자를 쓰고 폭격 맞아 부서진 탱크 사이에서 밀을 베었다. 사랑은 단 하룻밤 불타오르고 시들었다. 칠월, 파멸의 달이었다고 기억한다. -파멸"


2010/04/22 12:33 2010/04/22 12:33

의료민영화 법률 4월 국회 상정 임박

뭐야. 이게.
민영화 안한다고 해서 믿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야.. 
아마도 나는 전국민의료보험(당연지정제)으로 조금 더 혜택을 받는 저소득층에 속할 것으로 예상되는데(고소득층이 많이 낸 보험료가 저소득층을 위해 쓰이는 시스템이니까..), 코앞에서 내 혜택이 날아가는 꼴을, 보고도 알지 못하는 상태일 뻔 했다.

작년과 올해 병원 다닐 일이 많아져 본의 아니게 알게 된 건데
내 앞에서 현 의료보험제도를 대놓고 싫어하거나 비아냥대는 의사들이 (어이없지만 실제로) 있었다.
벌써 두명이나 기억난다.
소위 말하는 사회 엘리트층의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번 4월에 국회 상정된다는 '병원경영지원회사(MSO)'가 허용되면 그 이후, '의사-대형의료법인-보험회사'가 강력하게 의료민영화 쪽으로 밀어붙일 것만 같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러리라고 싸잡아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형의료법인과 보험회사 만큼은 개별적 양심? 뭐 그런 브레이크가 절대 작동될 리 없다.)

요 수순이 어떻게 흘러갈지 쉽게 설명한 글이 있어서 펌 했다.
정말. 이건 아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지..? 반대서명을 하거나, 지방선거 때 공약을 살펴보는 것 말고 할 일은 없나? 진짜 무섭단 말이야.

more..


 

2010/04/20 21:59 2010/04/20 21:59

-------------

from 실험실 2010/04/18 12:49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요일 오전.
정민아-그 무엇이 되어.
옅은 설렘과 애잔함이 뒤엉킨 이상한 시간.

@20100418004950P
2010/04/18 12:49 2010/04/18 12:49

전리품

from 작지만 확실한 생각 2010/04/15 13:25
전주국제영화제 티켓 예매가 조금 전 11시부터 시작되어서
일어나자마자 노트북 켜고 요이땅 예매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접속자 폭주 & 서버 다운이라는, 영화제라면 당연히 보도자료로 뿌려줘야 하는 그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
미리 찜해두었던 영화 리스트가 있는 '마이페이지'가 작동이 안되니
영화코드를 알 수가 없고
영화코드를 알 수가 없으니, 영화코드로만 검색을 할 수 있게 만든 JIFF의 홈페이지에선(왜 제목으로 검색하게 안하고, 코드로 검색하게 했을까. 사용자 중심이 아니라 운영자 중심의 태도라서 맘에 안든다) 당연히 예매도 할 수 없었다.
먹통이 된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폭주는 당연한 건데, 왜 미리 조치를 안하고 일이 벌어지고 나면 서버 증설을 할까'란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보도자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겠지.
그러고보니 일반 관람객 입장에서 전주영화제를 가는 게 처음이라 (이전엔 프레스 등록을 하고 가서 줄 안서고, 그리고 돈 안내고 영화를 봤었으니까..) 이런 불편이 있는 줄 몰랐다.

어쨌든
그래서 딴짓하며 기다리자는 생각에 시답잖은 웹 서핑을 하다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버가 정상화 되었던 건지
조금 전까지는 밥해먹겠다며 논에 떨어진 낱알을 하나하나 줍는 것 같던 홈페이지가
갑자기 전자레인지에 햇반 돌리는 속도로 뻥뻥 뚫리는 거였다.
망했다, 싶어서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차례차례 예매해보는데
역시나 대부분 매진되었다. 그 몇분 찰나에! ㅠㅠ

그 와중에 건진 전리품 인증샷.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동원 회고전이 제일 먼저 매진될 줄 알았는데..의외로 널널하게 자리가 남아있어서 의아해하며 예매. 두 타임 모두 GV시간도 붙어있다.
<그녀에게>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나 작품을 구해보기는 어렵던 김성호 감독의 영화라서 완전완전 보고 싶었던 것. 한자리가 남아있길래 얼른 예매했다. 내가 문닫고 매진시킨 거라 더 짜릿했다.  
<시네마스케이프 단편><한국단편경쟁>은 애당초 찜해둔 건 아니다.
전주영화제에서 낯선 나라의 장편 영화를 보는 게 치명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수면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몸이 기억해서, 땡기는대로 예매를 하고 보니 둘다 단편이었던 것.

아. 재밌겠다.
오랜만에 가는 전주영화제.
삼백집 가서 콩나물국밥 먹고, 동그라미 제과 토스트 먹어줘야지.
ㅎㅎ

2010/04/15 13:25 2010/04/15 13:25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아빠랑 서랍에서 뭘 꺼내려고 열었다가 이 테입들을 발견했다.
보자마자 순식간에 플래시백.
내가 태어나자마자 살았던 곳, 소박하기 그지없는 우리 엄마아빠의 첫 아파트. 지금 내가 혼자 사는 오피스텔 정도 크기의 주공아파트에서 엄마아빠언니랑 지지고 볶으며 깔깔 웃고 미친 듯 싸우고 했던 그런 시간들이 단박에 떠올랐다.
그 아파트에서 아빠는 이따금씩 녹음기를 켜두고 언니와 내 목소리, 노래소리 등을 담았는데, 그 중 일부가 지금까지 서랍 안에서 살아있던 것이다.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 소유하고 싶어하는 내 습성은, 오늘에서야 밝혀진 건데, 아빠를 닮았다.)

첫번째 테이프는 1981년에 녹음된 것으로 아마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같다.
언니는 세살. 엄마는 스물여덟살.
테입을 재생시키니까 등대지기, 푸른하늘 같은 노래를 불러주는 엄마 목소리 사이사이 까르륵 대는 아기 웃음소리가 섞여 나온다.
세상에, 엄마의 스물여덟이라니.
스물여덟 엄마 목소리는 너무나 포근했다. 스물아홉이나 먹은 딸이 듣기에도.
참. TV를 켜놓고 녹음을 했는지 엄마 목소리 뒤 배경으로 쌍방울 매리야스 CM송이 나오는데, 아,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두번째 테이프는 1984년에 녹음된 것으로 언니가 여섯살, 내가 세살 때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고 이야기 지어내는 걸 너무너무 좋아했다. 내가 기억하는 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은 맨날 혼자서 구연동화 하듯 쫑알쫑알 거리는 모습 밖에 없다. 엄청 까불거리는 성격이었고 목소리도 커서 난 항상 언니가 '생쇼'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동생이었다.
이 자매 패턴은 고스란히 언니의 두 딸에게로 전수되어, 지금 다섯 살이 된 큰 조카는 정말 시끄럽다. ㅎㅎ 세살 된 작은 조카는 언니를 지켜보다가 이따금 "나도. 나도"라고 말하고.
태어나자마자 노래와 구연동화창작을 한시도 쉬지 않은 언니와 지냈던 탓에, 이 테이프에 녹음된 세살짜리 나는 부를 줄 아는 동요도 꽤 많고, 말도 꽤 잘한다.

세번째 테이프는 1987년. 언니가 아홉살, 내가 여섯살 때고, 네번째 테이프는 1991년. 언니가 열세살, 내가 열살 때다. 네번째 테이프를 녹음할 당시 언니와 나 모두 피아노 학원에 다녔었는데, 나는 정말 억지로 죽지 못해 다녔지만(결국 1992년에 생일 선물로 피아노 대신 컴퓨터를 배우게 해달라고 부모님과 '딜'을 해서, 이때부터 나와 언니의 행보가 달라졌다.) 언니는 재능을 인정 받으며 각종 콩쿨 준비를 할 때였다.
오늘 테이프에 녹음된 언니 피아노 연주를 듣는데, 너무 훌륭해서 깜짝 놀랐다. 그때는 언니가 집에서 피아노 치면 시끄럽기만 했는데.. 한번도 언니가 피아노 칠 때 옆에 앉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한번쯤 그랬으면 좋았겠단 생각을 했다.  

'기억하는 모든 것이 사랑이 된다'는 영화 <마법사들>의 카피가 진실이라면
스쳐가는 일상의 작은 풍경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일기나 사진, 녹음, 녹화, 메모나 낙서라도-을 열심히 해둘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시간은 분초까지 기록해 소유하고 싶어도 결국은 날아가 버리지만
그 시간에 새겨진 기억이나 추억은
당시엔 그저 보통의 날들이었더라도  
기억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별안간, 기대치도 않았던 상황에서 나를 따뜻하게 채워주니까.  


2010/04/09 13:38 2010/04/09 13:38

------------

from 실험실 2010/04/07 10:47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0401-20100406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한 일은
아이폰으로
요 그림 하나 그린 것과
가십걸 시즌 1을 내리 본 일 밖에 없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멍 때리면서 6일을 보냈다.(그럴 수밖에 없는 몸상태이긴 했다)
이제 뭐하지?
아...
머리가 딱딱해졌다.
콜록콜록 거리면서 겨우 시동이 걸리는 낡은 트럭처럼
부팅을 해보려고 해도 아무런 생각이 안난다.
전신마취 탓이라고, 핑계 대야지.

@ 20100407104712A

2010/04/07 10:47 2010/04/07 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