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지 꽤 되었는데 이제야 밑줄 친 부분을 옮길 시간이 생겼다.
난 이석원의 음악만 들었지, 그의 인터뷰나 그가 쓴 글을 읽어본 적은 없어서
어떤 사람일지 추측해 볼 힌트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음악을 봐서는 엄청나게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복잡하겠구나 싶긴 했지만.
그런데
이렇게 재밌고 귀여운(물론 그의 외모를 보면서도 귀엽단 말을 선뜻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얼굴을 안보고 책만 봐서는 귀엽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면을 가진 아저씨인지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 낄낄거리다 배 잡고 웃고, 텅 빈 집에 울리는 내 웃음소리가 어색하고 민망해서 씁쓸하게 웃음을 거두는 짓을 몇번이나 했다.
이혼을 계기로 자신이 '보통의 존재'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글을 쓴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엔 결혼과 사랑에 대해 회의하고, 질문을 던지는 구절들이 많다.
한때는 자신의 전부를 뒤흔들던 감정이 왜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사랑은 왜 변할까, 이런 식의 질문.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할 때
물론 '오죽하면 저걸 물어볼까' 생각한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 장면에서 느낀 건
'쯧쯧. 가서 엄마 젖 더 먹고 와' 였다.
사랑은 당연히 변하는 거야, 니가 세상을 덜 겪어봐서 그런 어리광을 피우는 거야. 뭐 그런 느낌?
내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게 아니라, 그 장면의 연출 의도가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의 난 (그때가 스무살이었으니까) 당연히 진정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유지태의 심정에 몰입이 되었었고.
어쨌든
이제 곧 서른이 되는데
유지태식의 '동화'에도, 이석원식의 '보도'에도 모두 동의가 되지 않는다.
뭐,
과도기는 재미있는 거니까
괜찮다.
==========================================================
"더 이상 서로를 봐도 가슴이 뛰지 않고
키스는 짜릿하지 않을 때,
잡은 손은 무디어 별 느낌이 없을 때
그것이 왜 절망이 되지 않는지,
어떻게 그럼에도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고 싶다.
그럴 때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은 무엇인지."
"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은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전에 사람한테 주지 못한 걸 이번 사람한테 주고 전에 사람한테 당한 걸 이번 사람한테 푸는 이상한 게임이다. 불공정하고 이치에 안 맞긴 하지만 이 특이한 이어달리기의 경향이 대체로 그렇다."
"희망이 생기리라는 희망.
소통이 가능하리라는 믿음.
가족이라는 제도가 지속되리라는 기대...
어렸을 때부터 믿어왔던 가치들이 이렇듯 차례차례 허물어져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저는 사랑과 생명에 끝이 있다는 것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하구요.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나의 삶은 38년간 무기력함에 시달리다가 마흔을 앞두었다는 시기적 절박감과 마침 무너졌던 건강 덕분에 생의 유한함을 절실히 목도한 후 비로소 삶에 생명력과 애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생토록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가 그제서야 하고 싶은 게 생겨나더군요."
"갈망의 마음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면서도 다른 존재의 간절함에는 무심했던 것이다. 간절함이란 이처럼 모순된 것일까. 눈앞에서 죽음으로 호소하고 있는데도 이토록 외면할 수 있다니. 아마도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는 무엇도 내게 이렇게 무심하리라. 나의 간절함은 결코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리라."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 뿐."
"내가 그토록 달아나고 싶고, 회의하던 것들로부터 나와 내 삶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인 순간, 나의 모든 아쉬움들은 그제야 비로소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잘나지 않은 내 가족과 친구들, 무엇보다 늘 부끄럽게 여기던 내 자신까지, 바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내게 건넨 힘과 그들과 함께했던 세월 덕택이었습니다."
"그다음 버섯. 아주 음흉한 놈이다. 어렸을 땐 버섯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기도 아닌 것이 잡채 속에 들어가 늘 고기 행세를 하며 사람을 기만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버섯의 진가를 알게 되고 난 후 이제는 고기가 주는 건더기의 쾌감을 만족시켜주면서도 정신적인 안정감까지 주는(건강에 좋으므로) 멋진 친구가 되었다."
"아들을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로 길러내려 억압하고 채근하던 엄마는 이제 행여 자식 일에 지장을 줄까봐 늘 노심초사하는 늙은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분명 나의 생에 무언가 엄청난 결핍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구멍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아니 채우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새벽 두시에 일어나서 소리를 내며 집안일을 하는 엄마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 ... 그런 일상의 불가항력 속에서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점점 휘발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슬프다."
"돌이켜보면 씁쓸한 것은 사람이 결혼하자고, 우리 같이 살자고 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제발 헤어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고 싶다고 눈이 멀어서 맹렬히 달려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어 더 무서운 속도로 돌아오는 것. 그게 사람의 이기심이란 것일까."
"사랑을 약물의 힘으로 지속시킨다는 것의 순수성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사랑을 호르몬 놀음으로 만들어버린 의학자나 조물주에게 먼저 따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것은 남들보다 세상을 더 조심스럽게, 실수 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과 내가 거북이라면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등딱지를 남들 것보다 좀 더 강하고 정밀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만큼 속의 알맹이가 약했기 때문이리라."
"어디든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고 누구든 병들거나 죽지 않으며 사랑은 결코 시들어 소멸하지 않아 이별 따위 없는, 모함과 오해와 갈등 같은 것 없는 진짜 천국."
"세상은 자기만 알고 있어도 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굳이 공개적으로 쓸 때엔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생각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너그러움과 호기심을 갖고 대해준다."
난 이석원의 음악만 들었지, 그의 인터뷰나 그가 쓴 글을 읽어본 적은 없어서
어떤 사람일지 추측해 볼 힌트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음악을 봐서는 엄청나게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복잡하겠구나 싶긴 했지만.
그런데
이렇게 재밌고 귀여운(물론 그의 외모를 보면서도 귀엽단 말을 선뜻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얼굴을 안보고 책만 봐서는 귀엽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면을 가진 아저씨인지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 낄낄거리다 배 잡고 웃고, 텅 빈 집에 울리는 내 웃음소리가 어색하고 민망해서 씁쓸하게 웃음을 거두는 짓을 몇번이나 했다.
이혼을 계기로 자신이 '보통의 존재'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글을 쓴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엔 결혼과 사랑에 대해 회의하고, 질문을 던지는 구절들이 많다.
한때는 자신의 전부를 뒤흔들던 감정이 왜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사랑은 왜 변할까, 이런 식의 질문.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할 때
물론 '오죽하면 저걸 물어볼까' 생각한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 장면에서 느낀 건
'쯧쯧. 가서 엄마 젖 더 먹고 와' 였다.
사랑은 당연히 변하는 거야, 니가 세상을 덜 겪어봐서 그런 어리광을 피우는 거야. 뭐 그런 느낌?
내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게 아니라, 그 장면의 연출 의도가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의 난 (그때가 스무살이었으니까) 당연히 진정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유지태의 심정에 몰입이 되었었고.
어쨌든
이제 곧 서른이 되는데
유지태식의 '동화'에도, 이석원식의 '보도'에도 모두 동의가 되지 않는다.
뭐,
과도기는 재미있는 거니까
괜찮다.
==========================================================
"더 이상 서로를 봐도 가슴이 뛰지 않고
키스는 짜릿하지 않을 때,
잡은 손은 무디어 별 느낌이 없을 때
그것이 왜 절망이 되지 않는지,
어떻게 그럼에도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고 싶다.
그럴 때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은 무엇인지."
"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은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전에 사람한테 주지 못한 걸 이번 사람한테 주고 전에 사람한테 당한 걸 이번 사람한테 푸는 이상한 게임이다. 불공정하고 이치에 안 맞긴 하지만 이 특이한 이어달리기의 경향이 대체로 그렇다."
"희망이 생기리라는 희망.
소통이 가능하리라는 믿음.
가족이라는 제도가 지속되리라는 기대...
어렸을 때부터 믿어왔던 가치들이 이렇듯 차례차례 허물어져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저는 사랑과 생명에 끝이 있다는 것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하구요.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나의 삶은 38년간 무기력함에 시달리다가 마흔을 앞두었다는 시기적 절박감과 마침 무너졌던 건강 덕분에 생의 유한함을 절실히 목도한 후 비로소 삶에 생명력과 애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생토록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가 그제서야 하고 싶은 게 생겨나더군요."
"갈망의 마음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면서도 다른 존재의 간절함에는 무심했던 것이다. 간절함이란 이처럼 모순된 것일까. 눈앞에서 죽음으로 호소하고 있는데도 이토록 외면할 수 있다니. 아마도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는 무엇도 내게 이렇게 무심하리라. 나의 간절함은 결코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리라."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 뿐."
"내가 그토록 달아나고 싶고, 회의하던 것들로부터 나와 내 삶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인 순간, 나의 모든 아쉬움들은 그제야 비로소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잘나지 않은 내 가족과 친구들, 무엇보다 늘 부끄럽게 여기던 내 자신까지, 바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내게 건넨 힘과 그들과 함께했던 세월 덕택이었습니다."
"그다음 버섯. 아주 음흉한 놈이다. 어렸을 땐 버섯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기도 아닌 것이 잡채 속에 들어가 늘 고기 행세를 하며 사람을 기만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버섯의 진가를 알게 되고 난 후 이제는 고기가 주는 건더기의 쾌감을 만족시켜주면서도 정신적인 안정감까지 주는(건강에 좋으므로) 멋진 친구가 되었다."
"아들을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로 길러내려 억압하고 채근하던 엄마는 이제 행여 자식 일에 지장을 줄까봐 늘 노심초사하는 늙은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분명 나의 생에 무언가 엄청난 결핍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구멍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아니 채우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새벽 두시에 일어나서 소리를 내며 집안일을 하는 엄마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 ... 그런 일상의 불가항력 속에서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점점 휘발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슬프다."
"돌이켜보면 씁쓸한 것은 사람이 결혼하자고, 우리 같이 살자고 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제발 헤어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고 싶다고 눈이 멀어서 맹렬히 달려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어 더 무서운 속도로 돌아오는 것. 그게 사람의 이기심이란 것일까."
"사랑을 약물의 힘으로 지속시킨다는 것의 순수성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사랑을 호르몬 놀음으로 만들어버린 의학자나 조물주에게 먼저 따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것은 남들보다 세상을 더 조심스럽게, 실수 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과 내가 거북이라면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등딱지를 남들 것보다 좀 더 강하고 정밀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만큼 속의 알맹이가 약했기 때문이리라."
"어디든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고 누구든 병들거나 죽지 않으며 사랑은 결코 시들어 소멸하지 않아 이별 따위 없는, 모함과 오해와 갈등 같은 것 없는 진짜 천국."
"세상은 자기만 알고 있어도 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굳이 공개적으로 쓸 때엔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생각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너그러움과 호기심을 갖고 대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