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셉템버 이슈>를 이제야 봤다.
안나 윈투어에 대한 기사가 나간 게 2월호였고, 지금은 4월호를 만들고 있으니까..한참 늦긴 했다.
기사를 쓴 후배는 <셉템버 이슈>를 통해 '안나 윈투어 당신도 사람이었군요'를 느꼈다는데, 나는 빨강머리의 패션에디터 그레이스 코딩턴 할머니가 나올 때마다 가슴팍이 욱씬거렸다.
촬영해 온 화보 중 일부 컷을 안나 윈투어가 빼버렸을 때, 아예 화보 통째로 재촬영 명령이 떨어졌을 때, 다른 에디터의 셀러브리티 화보 때문에 자신의 화보 비중이 영향을 받을까 신경전을 벌일 때 그레이스 코딩턴이 보여준 표정은 나에게 두가지 마음을 갖게 했다.
하나는 '40년 동안 에디터로 일했는데도, 한컷한컷 자신의 일부처럼 공들이고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감동적이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40년 동안 에디터로 일해도, 한컷한컷의 결과 때문에 노심초사 할수밖에 없나보다'는 생각.
신입 에디터든 40년차 에디터든 편집장의 간택과 'kill' 명령에 자신의 칼럼을 맡겨야 한다.
그레이스 코딩턴을 보면서 진짜 대단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패션산업 전체를 장악한 신화 안나 윈투어와 20년 동안 견해 차이로 싸웠음에도
다큐에 등장하는 많은 스태프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취향이 '원래' 안나의 취향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듯이 얼버무리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큐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스태프들이 안나가 결정을 내리면, '아 그렇죠. 그 편이 ~~~하니 좋겠네요'라고 그녀의 견해를 떠받드는 모습을 보인다)
킬되어도, 재촬영이 떨어져도, 페이지가 줄어도, 풀이 죽지 않는다.
"난 좋은데 왜?"라고 끝까지 말한다.
그 모습이 괜한 고집이나 아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뽑아내는 화보의 결과물들이 너무나 탁월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녀 자신이, 스스로 녹슬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경력과 연륜이 대단하지만, 그것에 기대지 않고 패션에 대한 환상과 꿈을 가진 소녀처럼 일하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40년차인데 태도와 관점은 신입의 그것처럼 신선하다니..
패션쇼에 참석했을 때나 디자이너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을 때, 선글라스에 팔짱을 끼고 꼿꼿이 앉아 있는 안나 윈투어와 달리 그레이스 코딩턴은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한다. 그녀가 안나 윈투어보다 아는 게 없어서일까?

<요렇게 말이다. 그레이스 코딩턴은 손녀뻘 되는 모델 신발을 손수 신겨주는 할머니 에디터이기도 하다.>
40년 째 오뜨꾸뛰르 컬렉션에 참석했지만, 하고 싶은 게 넘쳐나서 고민이고
차에서 이동할 때도 창밖의 모든 풍경이 소재가 되고 영감을 줄 수 있기에 '항상 눈을 뜨고' 있는다는 그레이스 코딩턴의 이야기를 듣는데, 7년 전 인턴 에디터에서 정식 에디터로 발령받고 첫달에 쓴 '쫑' 생각이 났다.
정확한 문장은 잊어버렸지만, 요는 이거였다. 볼 것이 많고, 알아야 할 것이 많아진 곳에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새록새록한 시선을 잃지 않고 싶다고 썼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물론.
창피해졌다.
난 7년 전의 나처럼 모든 것이 신나고, 해보고 싶고, 기사로 써보고 싶고, 그렇지 않으니까.
아, 저 씩씩한 내공과 신선한 시선.
닮고 싶고, 배우고 싶다.
안나 윈투어에 대한 기사가 나간 게 2월호였고, 지금은 4월호를 만들고 있으니까..한참 늦긴 했다.
기사를 쓴 후배는 <셉템버 이슈>를 통해 '안나 윈투어 당신도 사람이었군요'를 느꼈다는데, 나는 빨강머리의 패션에디터 그레이스 코딩턴 할머니가 나올 때마다 가슴팍이 욱씬거렸다.
촬영해 온 화보 중 일부 컷을 안나 윈투어가 빼버렸을 때, 아예 화보 통째로 재촬영 명령이 떨어졌을 때, 다른 에디터의 셀러브리티 화보 때문에 자신의 화보 비중이 영향을 받을까 신경전을 벌일 때 그레이스 코딩턴이 보여준 표정은 나에게 두가지 마음을 갖게 했다.
하나는 '40년 동안 에디터로 일했는데도, 한컷한컷 자신의 일부처럼 공들이고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감동적이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40년 동안 에디터로 일해도, 한컷한컷의 결과 때문에 노심초사 할수밖에 없나보다'는 생각.
신입 에디터든 40년차 에디터든 편집장의 간택과 'kill' 명령에 자신의 칼럼을 맡겨야 한다.
그레이스 코딩턴을 보면서 진짜 대단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패션산업 전체를 장악한 신화 안나 윈투어와 20년 동안 견해 차이로 싸웠음에도
다큐에 등장하는 많은 스태프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취향이 '원래' 안나의 취향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듯이 얼버무리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큐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스태프들이 안나가 결정을 내리면, '아 그렇죠. 그 편이 ~~~하니 좋겠네요'라고 그녀의 견해를 떠받드는 모습을 보인다)
킬되어도, 재촬영이 떨어져도, 페이지가 줄어도, 풀이 죽지 않는다.
"난 좋은데 왜?"라고 끝까지 말한다.
그 모습이 괜한 고집이나 아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뽑아내는 화보의 결과물들이 너무나 탁월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녀 자신이, 스스로 녹슬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경력과 연륜이 대단하지만, 그것에 기대지 않고 패션에 대한 환상과 꿈을 가진 소녀처럼 일하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40년차인데 태도와 관점은 신입의 그것처럼 신선하다니..
패션쇼에 참석했을 때나 디자이너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을 때, 선글라스에 팔짱을 끼고 꼿꼿이 앉아 있는 안나 윈투어와 달리 그레이스 코딩턴은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한다. 그녀가 안나 윈투어보다 아는 게 없어서일까?

<요렇게 말이다. 그레이스 코딩턴은 손녀뻘 되는 모델 신발을 손수 신겨주는 할머니 에디터이기도 하다.>
40년 째 오뜨꾸뛰르 컬렉션에 참석했지만, 하고 싶은 게 넘쳐나서 고민이고
차에서 이동할 때도 창밖의 모든 풍경이 소재가 되고 영감을 줄 수 있기에 '항상 눈을 뜨고' 있는다는 그레이스 코딩턴의 이야기를 듣는데, 7년 전 인턴 에디터에서 정식 에디터로 발령받고 첫달에 쓴 '쫑' 생각이 났다.
정확한 문장은 잊어버렸지만, 요는 이거였다. 볼 것이 많고, 알아야 할 것이 많아진 곳에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새록새록한 시선을 잃지 않고 싶다고 썼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물론.
창피해졌다.
난 7년 전의 나처럼 모든 것이 신나고, 해보고 싶고, 기사로 써보고 싶고, 그렇지 않으니까.
아, 저 씩씩한 내공과 신선한 시선.
닮고 싶고,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