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고사 직전인 해외 뮤지션의 공연실황 DVD 시장에 대한 짧은 기사가 있어서
취재 중에 엠넷의 피디에게서 이 클립을 추천 받았다.
이렇게 간결하고 명확하게 음악을 비주얼로 표현하다니, 정말 마이클 잭슨은 천재다.
그가 살아있을 때 진가를 이해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난 마이클 잭슨을 오해하기 가장 쉬운 세대였다.
이것에 대한 생각은 몇개월 전에 기사로 쓴 게 있으니..
2009.08.ceci
마감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지난 7월 4일, 마감의 압박감을 잊기 위해 잠시 TV를 켰다. 마침 MBC에서 1992년 10월 루마니아 부쿠레시티에서 열렸던 마이클 잭슨 공연 실황을 방영하고 있었다. 난 마이클 잭슨의 열혈 팬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 채널을 바꿀 정도로 그의 음악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무심코 보기 시작했건만 90분 내내 그의 몸짓과 목소리 하나하나에 깜짝 놀랐고, 마지막 곡 'Man in the Mirror'가 나올 땐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기묘한 체험을 했다. 어셔, 비의 콘서트에서 흔히 보던, 무대 아래서 별안간 튀어 올라오는 '토스터 기법'부터 뮤지컬의 한 장면 같았던 'Thriller'의 무대 연출, 대형 스크린 속 모션 그래픽, 그리고 크레인과 와이어를 활용한 퍼포먼스,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군무까지, 거기엔 사람들이 콘서트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방송이 끝나고 TV를 끄자 정적이 도드라지게 엄습했다. 마이클 잭슨이 누구였던가, 그가 떠나고 우리가 잃은 건 도대체 뭔가, 마음이 심란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마이클 잭슨에 대해 가장 오해하기 쉬운 세대로 태어났다. 그를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한 기폭제가 되었던 앨범 <Thriller>가 발표된 1982년에 태어나 그의 폭발적인 전성기를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우리 세대가 팝 음악과 MTV에 빠져들었던 1990년대 중반에는 그는 이미 전설적인 존재였다. 다들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이 대단했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단적인 예로 난 문 워크(moon walk)를 여러 댄스 가수의 리바이벌 퍼포먼스로 먼저 보았다. 마이클 잭슨의 원조 퍼포먼스를 본 것은 한참 후 일이다. 비유하자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은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해설서를 읽고, 도스토옙스키를 안다고 생각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마이클 잭슨이 비틀스나 레드 제플린, 토토처럼 아예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역사 속의 뮤지션'이었다면 오히려 그의 음악적 성과에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90년대에 마이클 잭슨은 아동 성추행 혐의와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의 결혼과 이혼, 대리모 등 기괴한 뉴스로 가십란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했다. 그의 빛나는 창작물을 굳이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마이클 잭슨은 지겨울 정도로 알려진 존재였다. 그가 '역사 속 뮤지션'이 되어버린 지금에서야 나는 내 시대와 조금은 엇나갔고 조금은 포개졌던 마이클 잭슨을 추억한다.
블라블라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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