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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빠랑 서랍에서 뭘 꺼내려고 열었다가 이 테입들을 발견했다.
보자마자 순식간에 플래시백.
내가 태어나자마자 살았던 곳, 소박하기 그지없는 우리 엄마아빠의 첫 아파트. 지금 내가 혼자 사는 오피스텔 정도 크기의 주공아파트에서 엄마아빠언니랑 지지고 볶으며 깔깔 웃고 미친 듯 싸우고 했던 그런 시간들이 단박에 떠올랐다.
그 아파트에서 아빠는 이따금씩 녹음기를 켜두고 언니와 내 목소리, 노래소리 등을 담았는데, 그 중 일부가 지금까지 서랍 안에서 살아있던 것이다.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 소유하고 싶어하는 내 습성은, 오늘에서야 밝혀진 건데, 아빠를 닮았다.)

첫번째 테이프는 1981년에 녹음된 것으로 아마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같다.
언니는 세살. 엄마는 스물여덟살.
테입을 재생시키니까 등대지기, 푸른하늘 같은 노래를 불러주는 엄마 목소리 사이사이 까르륵 대는 아기 웃음소리가 섞여 나온다.
세상에, 엄마의 스물여덟이라니.
스물여덟 엄마 목소리는 너무나 포근했다. 스물아홉이나 먹은 딸이 듣기에도.
참. TV를 켜놓고 녹음을 했는지 엄마 목소리 뒤 배경으로 쌍방울 매리야스 CM송이 나오는데, 아,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두번째 테이프는 1984년에 녹음된 것으로 언니가 여섯살, 내가 세살 때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고 이야기 지어내는 걸 너무너무 좋아했다. 내가 기억하는 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은 맨날 혼자서 구연동화 하듯 쫑알쫑알 거리는 모습 밖에 없다. 엄청 까불거리는 성격이었고 목소리도 커서 난 항상 언니가 '생쇼'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동생이었다.
이 자매 패턴은 고스란히 언니의 두 딸에게로 전수되어, 지금 다섯 살이 된 큰 조카는 정말 시끄럽다. ㅎㅎ 세살 된 작은 조카는 언니를 지켜보다가 이따금 "나도. 나도"라고 말하고.
태어나자마자 노래와 구연동화창작을 한시도 쉬지 않은 언니와 지냈던 탓에, 이 테이프에 녹음된 세살짜리 나는 부를 줄 아는 동요도 꽤 많고, 말도 꽤 잘한다.

세번째 테이프는 1987년. 언니가 아홉살, 내가 여섯살 때고, 네번째 테이프는 1991년. 언니가 열세살, 내가 열살 때다. 네번째 테이프를 녹음할 당시 언니와 나 모두 피아노 학원에 다녔었는데, 나는 정말 억지로 죽지 못해 다녔지만(결국 1992년에 생일 선물로 피아노 대신 컴퓨터를 배우게 해달라고 부모님과 '딜'을 해서, 이때부터 나와 언니의 행보가 달라졌다.) 언니는 재능을 인정 받으며 각종 콩쿨 준비를 할 때였다.
오늘 테이프에 녹음된 언니 피아노 연주를 듣는데, 너무 훌륭해서 깜짝 놀랐다. 그때는 언니가 집에서 피아노 치면 시끄럽기만 했는데.. 한번도 언니가 피아노 칠 때 옆에 앉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한번쯤 그랬으면 좋았겠단 생각을 했다.  

'기억하는 모든 것이 사랑이 된다'는 영화 <마법사들>의 카피가 진실이라면
스쳐가는 일상의 작은 풍경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일기나 사진, 녹음, 녹화, 메모나 낙서라도-을 열심히 해둘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시간은 분초까지 기록해 소유하고 싶어도 결국은 날아가 버리지만
그 시간에 새겨진 기억이나 추억은
당시엔 그저 보통의 날들이었더라도  
기억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별안간, 기대치도 않았던 상황에서 나를 따뜻하게 채워주니까.  


2010/04/09 13:38 2010/04/0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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