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고나길 누군가 '가르치려 드는 것'에 격한 거부감을 가진 탓인지
나부터도 타인에게 내 생각이나 신념을 설득하는 행위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설득하겠다는 것 자체가 몹시 자신만만한 행동처럼 느껴지도 했다.
진보신당에 들어갔던 것도
옳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내 일상을 할애하기 위해서였지
진보신당의 세를 넓혀야 한다는 각오 때문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난 이런 것들을 추구해요. 난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당신의 생각보다는 내 생각이 더 맞지 않나요?"라고 설득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었다.
어쩌면
세력을 만들어가며 남들을 설득하는 일, 그 자체에 그다지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서 혹은 용기내지 못하면서
특정 정당의 당원이 되었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긴 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상황이 오리라 예감도 했다.
그 때가 되면, 천천히, 공을 들여 설득하리라 생각했었다.
#2
오늘 친한 회사사람 6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6월 2일 투표에서 정당투표는 7번 진보신당을 뽑아달라는 내용을 적었다.
그렇게 해야겠다고 선택했다.
자연스럽게 저절로 된 게 아니라
굳이 해야겠다고 결심해서 할 수 있었다.
굳이 해야겠다고 이제야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에게 권해도 좋을만한 진짜 괜찮은 물건'이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나에 대한 존중감이 조금 더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에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입당이라는 정치적인 커밍아웃을 했던 것이었는데
이제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 편이 좋아"라고 말할 여유가 아주 조금 생겼달까.
이건 그만큼 내가 스스로를 믿어준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나름대로는
신념을 설득하는 행위를 처음 했던 것이어서
모두 친한 사람들이었음에도 조금 떨렸고, 많이 조심스러웠다.
#3
저녁식사 시간에 한 선배가
"나 노회찬 싫어. 그래서 진보신당 싫어해"라고 운을 떼며 지난 경험담 하나를 들려주었다.
선거홍보문자와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였는데
선배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제 겪은 일이라 그 마음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쨌든 (선배 입장에선 중요했지만, 내가 듣기엔 사소했던) 빈정상하는 사건 하나 때문에
내가 존경하는 한 사람의 의미와 행보, 약속이 싸잡아 비하당하는 걸 듣고 있자니
너무너무 불편하고 못 견디겠어서
지금이 천천히, 공을 들여 설득해야 될 때라고 생각하며
좋게 풀어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니가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내 생각은 변함 없어. 흥' 하고 덮어놓고 배척하는 선배의 마음을 열어낼 현명한 아이디어나 기지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화가 치밀어 올라서 내 마음을 달래는 것조차 벅찼다.
대꾸하기 시작하면 싸울 것 같아서
싸우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듣고 참았다.
그러고 났더니 그 사람 자체에 정이 떨어졌다. 이런 건 싫은데,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덮어놓고 비난하고 싫어하는 건 싫은데, 정이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서
타인을 설득하려고 덤벼드는 건 굉장한 애정(삐끗하면 집착. 어쨌든 상당한 에너지)을 필요로 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신경에 거슬리지 않은 영역에 치워두지 뭐'라며 잘라내는 게 아니라
굳이 내 세계로 포함시키겠다는 의지이니까.
#4
그렇다면
나는
남들을 조금 더 설득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내가 잘 알아서, 혹은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내 세계 안의 그들을 저 구석진 곳에 치워두지 않기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개지려는, 기이하고도 애틋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5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블로그에 들어와서 보니 포스팅을 거의 하지 않은 5월 동안 내 블로그의 방문객은 매일 5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설.득.이라는 것을 해야겠다면
이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가슴을 울리는 멋진 글을 쓰고 싶었지만
능력부족으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멋진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 뜨거운 맛 by 김규항 (한겨레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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