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척 오랜만에 윤하와 통화를 했다.
윤하는 내 마음이 가장 소란스러웠던 고3때 내 발을 땅에 붙여준 친구다.
발을 땅에 붙여준 방법은 '수업 시간마다 쪽지 쓰기' '쉬는 시간마다 복도, 혹은 각자의 교실을 번갈아가며 만나 얘기' '야자 시간에 옥상가서 이야기 하기' '야자 끝나고 집에 가서 통화하기' '통화하다 땡기면 새벽에 택시 타고 만나서 다시 얘기하기' 등등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다.
그 때 우리가 했던 건 연애였단 거. 그것도 대단히 열정적인 연애.
그리고 불안, 슬픔, 행복, 설레임, 욕망, 결핍 등등..감정의 원형들이 마구 뒤엉켜있던, 내 안의 실타래들을 하나 하나 풀 용기와 에너지를 그 연애로부터 채우고 배워가기 시작했다는 것도.
유별난 사건들을 여러개 벌인 탓에
(무작정 기차타고 서울가서 쏘다니기라던가, 늦게까지 교실에서 영화보고 놀다 문이 잠겨 세콤 사이렌을 울리며 탈출한 일이라던가,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에 맞춘 이벤트라던가, 잠긴 옥상문을 열기 위해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을 받쳐 입고 3층짜리 벽을 타고 오른 일 등등)
우린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굉장히 많다.
엄밀히 말하면 사건에 대한 추억이라기보다는 그 사건을 함께 겪으며 우리가 공유한 감정에 대한 추억..
그래서 윤하와 통화를 하고 나면,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는 감정과 사건인데도 그 때 그 순간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행복해지고, '내 인생 나쁘지 않구나.'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든든해진다.
회사에서 일 때문에 조바심 낼 때, 취재하며 대단하고 멋지고 열정적인 사람들을 만날 때, 엉망으로 헝클어진 집을 바라볼 때, 나의 무기력을 마주하게 될 때, 마음이 헛헛한 새벽에 어쩔 줄 모르겠는 순간이 올 때, 어느 정도 소통이 되는 관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벽을 느낄 때...
'나는 왜 이렇지? 왜 더 해내지 못하지? 마음은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과연 내가?'라며
내가 나를 의심하게 되는, 아니 의심하도록 만드는 순간은 꽤 자주 찾아온다.
나는 윤하를 통해 추억의 힘을 배웠다.
추억은 결국
내가 나를 믿도록, 응원하도록 만들어준다.
그 찬란했던 감정들은 오로지 내 것이니까, 이건 반박의 여지가 없으니까.
오늘도 1시간 40분이나 통화를 하면서
또 한번 추억의 힘을 느꼈다.
"괜찮아, 괜찮아. 잘 하고 있어." 추억은 이렇게 나를 다독거려준다.
2007년 초 생각했던, '기억으로 남는 사람보다는 추억으로 남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윤하 덕분에 되새김질하게 됐다. 그때 우린 이렇게 잘 통하는 우리가 만나게 된 건 '우주적인 차원에서 벌여준 이벤트'가 분명하다며 재잘거리곤 했는데, 음, 정말 그런 것 같다. 이런 게 우주적 이벤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