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from Note 2008/04/06 23:52
내겐 다섯권의 일기장이 있다.
나름대로는 연작의 개념으로 'Shape of my Heart'라는 똑같은 이름이 붙어있고, 뒤에 붙는 숫자만 다르다.
지금 쓰고 있는 소가죽 일기장은 베니스 여행을 갔을 때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산 거다.
손때가 타고 스크래치가 생길수록 간지가 나는, 핸드메이드 노트.
<Shape of my heart vol.5>는 2007년 1월 2일 새벽 1시 26분 25초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물 여섯을 막 시작하려던 찰나였고, 일상과 치열한 연애사의 고단함에 허덕일 무렵이었다.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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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섯. 이십대 후반의 시작을 이 일기장과 함께 한다.
계속해서 하중을 더해가는 삶의 무게와 일상의 귀찮음에 억눌려 내 자신의 내면과 교류하는 법을 잊지 않도록
부디
스스로를 놓아 버리지 않도록
도망가지 않도록
이 일기장이 도와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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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한 열여덟 때부터
내게 일기 쓰는 일은 절박한 행위에 가까웠다.
내 인생에 주홍글씨로 낙인 찍힌, 첫사랑 때문에 심란했을 때였고
매순간이 불안하고 슬펐던 그런 때였다.
어느 날 눈이 시리게 파란 모닝글로리 노트를 한권 샀는데, 거기에 무언가를 끼적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1999년 8월 29일 새벽 0시 47분 50초.
그 때 듣고 있던 스팅의 'Shape of my heart'를 따라 일기장에 이름을 붙였다.
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알아보자며 시작한 일기쓰기였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쏟아내는 일기&그래도 한번 어떻게 잘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도닥이는 일기가 오락가락 반복해서 쓰여졌다.
나에 대해서 '앗, 이건 뭘까?' 싶은 감정만을
일기장에 옮겨두고 파고들어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자연스레 생각이란 걸 하며 사는 시기엔 일기를 자주 쓰고
생각없이 사는 시기엔 일기장은 손도 안대게 된다.
오랫동안 써온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재미난 발견을 종종 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열아홉살 때 했던 고민을 스물 다섯에도 하고 있다는 것이나, 열 여덟때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어둔 게 어느 정도 실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내가 연애할 땐 폭발적으로 일기를 쓴다는 것.
'몰랐던 영역의 나'에 대해 알게 되는 데에는 연애만한 게 없단 소신도 이렇게 해서 생기게 된 거다.
어쨌든
한두달 즈음 일기를 쓰지 않는 스스로를 발견하면
'내가 지금 문제가 있구나. 아무 생각 없이 사는구나'라는 위기감이 느껴진다.
얼마 전엔 그런 기분을 느꼈다. 
책꽂이에 꽂힌 채 여러 주 동안 펼쳐지지 않은 일기장에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윽, 찔려. 알아. 근데 오만가지 것들 생각하려니 너무 피곤해~'라며 찜찜하게 도망다녔었다.
그러다 한달만에 일기를 썼다.
그리곤 조금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Shape of my heart vol.5>를 시작할 때 소망했던 것처럼
일기장이 나를 돕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갑자기 생긴 블로그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결국 <Shape of my heart vol.6>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소망한다.
놓아 버리지 않도록
도망가지 않도록
이 일기장이 도와주었으면 한다.
2008/04/06 23:52 2008/04/0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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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dream 2008/04/07 08:4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오..
    그렇지 놓아 버리지 않고, 도망가지 않으면
    언젠가는 답을 찾게 되겠지..
    그나저나 이 블로그가 Shape of 혜진's heart vol.6으로 사용된다니 기쁘구만.. ㅋ

    •  address  modify / delete 2008/04/07 12:06 radioheadian

      ㅋㅋ 잘 쓰고 있나 관리해주는 거예용? 자주 들러 주시넹.쿄쿄. 근데 게을러서 업데이트를 얼마나 자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