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16

from Note 2009/04/13 00:05
#1
아이템 회의를 준비하러 교보문고에 갔다.
광화문역에서 교보문고로 바로 통하는 계단에는 늘 하얀 퍼머머리 할머니 한 분이 구걸을 하고 계신다. '아...오늘은 어쩌지?' 모퉁이를 돌아 그 계단이 나타날 무렵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지갑 안에 천원짜리가 있었나?' '구세군 냄비에도 넣었는데, 또 해야하나?' '진짜 춥겠다..' 
계단을 막 올라가려는데 할머니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할아버지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구걸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사람이다.
오늘은 할머니에게 돈을 주지 않기로 선택했다.
할머니를 스쳐 지나가는데 내 심장 0.001g 정도가 뭉개진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가 있던 싸늘한 자리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교보문고 입구까지 3-4m정도 여린 핏빛의, 선택의 발자국이 생겼다.
 
 
#2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와 <지식e>를 구입하기로 선택했다.
<나는 왜...>는 패션잡지의 편집장을 지냈던 닐 부어맨이라는 영국 작가가 쓴 책이다. 20년 동안 모아온 온갖 명품 브랜드 물건을 2006년 9월 17일 런던 한복판에서 화형시킨 걸로 유명해진 사람인데, 그가 쓴 화형 준비기&화형식 이후 브랜드 없는 삶에 대한 일기가 묶여 있었다. 브랜드와 이미지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서 순도 100%의 자기를 찾아보려는 시도가 반가웠다. 원래 그런 질문은 잘 하진 않지만, 앞으로 인터뷰할 때 어떤 브랜드의 옷을 좋아하나, 좋아하는 향수는 뭔가 등등의 질문은 되도록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지식e>는 축구공이 한 개 만들어지는데 1620번의 바느질이 필요하고, 전세계 수제축구공의 70%를 인도와 파키스탄 아이들이 만든다는 구절 때문에 샀다. 내 평생 축구를 직접 할 일이 생기겠냐만, 선물로라도 그런 축구공은 절대로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니, 그렇게 선택했다.
 
# 3
밤새도록 아이템 회의를 준비해야 한다. 딴 생각 하지 말고 일을 해치우느냐, 오늘부터 써보기로 한 [선택일기]를 쓸 것이냐, 둘 중에 고민하다 일기를 쓰기로 선택했다. 이 선택으로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언지 알게 됐다.
작은 순간의 선택을 기록하다보면
그 안에 있는 나에 대한 독해힌트를 발견하게 될테고
그러면 더 큰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겠지
2009/04/13 00:05 2009/04/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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