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에 눈을 뜨니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지난 부산영화제 때 예매까지 해놓고 (데스크의 변심으로 출장이 2박3일에서 1박2일로 줄어드는 바람에) 못본 <콘트롤>을 볼까, 재개봉한 <아비정전>을 볼까 고민하다 <아비정전>을 보기로 선택했다.
장국영 추모 6주년을 기념해 재개봉했다는데
난 장국영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보다는 19년 전의 장만옥을 보러 극장에 갔다.
아침 10시 35분, 스폰지하우스 중앙.
이 시간에 극장에 온 게 얼마만이던가 기억을 되짚어봐도 직전 조조영화의 기억이 한톨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10년 쯤 되었을 거야, 감격하면서 표를 사는데 가격 4천원. "우와" 통제할 겨를도 없이 내 입에서 저런 감탄사가 툭 튀어나와 버렸다. 창피하게. 누군가에겐 '조조영화=4천원'이 당위겠지만, 그 순간 나에겐 축복 그 비슷했다. 10년간 미뤄두었던 축복을 받으며 <아비정전>을 보았다.
<아비정전>을 보는 내내 나는 울컥 울컥 솟는 반발심을 다스려야 했다.
'제발 아름답게 보여주지 마. 내 눈을 홀리지 마. 저렇게 허우적거리는 게, 싸지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저 혼돈이, 자기파괴적인 게 어디가 아름답니? 왕가위, 이 탐미주의자. 지독해. 지독해.' 뭐 이런 생각들이 계~속 이어졌달까.
왕가위가 감각을(때론 감각만) 자극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알고, 그의 작품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아마 내가 변했기 때문일 거다.
많은 영화들에서 혼돈 속의 청춘을 아름답게 그린다. 거칠고, 갑갑하고, 타인은 커녕 자신과의 대화도 하기 버거운 그런 불능의 상태를 아름답다고 추켜세운다. 그런 상태로 (아비처럼)돌연 죽기라도 하면, 혹여나 그게 자살이라면 선망이 커져 '아이콘'화 된다.
예전엔 나도 그런 드라마틱한 삶과 객기와 충동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정제되지 않은 파열음이 역설적으로 가장 에너제틱한 삶의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일면 멋있는 부분이 있긴 하다. 고리타분한 가치들을 전복시킬 때나 계산없이 달려드는 열정 같은 걸 볼 땐, 여전히.
그러나
아비는, 매우 미안하지만, 그리고 안타깝지만, 찌질하다.
친어머니와 양어머니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생긴 원초적인 결핍. 아비같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쉽게 말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비는 너무 니힐리스트다. 너무 갔다. (아니, 아비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정확히 말하면 왕가위가 너무 니힐리스트고 너무 간 것 같다.)
아비는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돈이 있고, 쉽게 얻은 돈으로 뭐든 쉽게 산다(buy). 여자의 마음도 쉽게 얻는다. 타인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의 무게감을 모르기 때문에 거침없이 다가간다. 그래서 두발이 땅에 굳건히 붙어있는 장만옥 같은 여자가 오히려 홀딱 넘어간다. 헤어지는 것도 쉽다. 여자가 못 버티고 나가 떨어지면 문 닫고 바이바이. 주변 사람들에겐 늘 민폐다.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아냐'며 목숨 내놓고 다니니까 '삶에 대한 성의와 인지상정'이 있는 경찰(유덕화)이 대신 칼맞는다. '내 것, 내가 가졌다, 내가 아낀다...'이런 애착이 없다. 그렇게 길러질 수 밖에 없었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래서 아비의 눈은 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허공 어딘가에서 답을 찾는다.
필리핀으로 친어머니를 찾으러 갔다 퇴짜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만약 친어머니가 만나주었더라면, 아비가 달라질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아니었을 것 같다. 친어머니가 만나주었더라도 아비는 그렇게 기차 안에서 죽었을 거다. 아마도.
왕가위가 못마땅한 건 이 때문이다.
'이래도 저래도 난 이 허무 안에서 벗어날 수 없어.이 안에서는 죽음도 유별난 사건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걸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들다니, 괘씸해. 정말.
#2
영화를 보고 치료를 받으러 한의원에 갔다. 물리치료실에 누워 전기치료를 받는데, 힐끗 옆으로 어떤 기계 위에서 '운동' 중인 아저씨가 보였다. 누워 있으면 상반신 쪽 침대 양쪽이 아래위로 움직여 허리 근육을 풀어주는 기계.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자의와 상관없이 '또르르' 굴러 다니게 되는 기계라, 살짝쿵 민망한 기분에 빠져들게 되는 그런 기계다. 그 위에서 성의가 가득 찬, 온전히 집중한 표정으로 운동에 임하고 있는 그 분을 보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적합한 연상인지 모르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서 '귀여운 페이스, 진지한 눈빛으로 교미 중인 다람쥐' 사진을 봤을 때 느꼈던 기분이 생각났다.
"어이구~ 그랬어요? 잘하고 있어요"라고, 애정 담긴 손길로 엉덩이 툭툭 때리면서 말하고 싶은 그런 기분. 삶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이 예뻐서, 대견해서...
따땃하게 뎁힌 전기치료기 위에서 잠깐 생각했다.
한의원에서 열심히 치료받는 아저씨에게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해
눈을 홀리게 표현해내는 영화가 나오면 참 좋겠다고.
#3
얼마 전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맞춰지지 않는 퍼즐 한 조각이 있었다.
일기장과 읽는 책에 시와 분, 초까지 적을만큼 난 매순간 충실하게 살고 싶었다. 마음에 애매하게 남아 있는 감정은 한 톨도 없길 바랐다. 그 이유는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고. "나, 아마 내일쯤 죽는다고 해도 별로 후회가 남진 않을 것 같아"라고 몇몇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늘 그런 생각이 머리 한 켠에, 작게, 그러나 끈질기게 붙어 있었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사람은 누구나 죽어'라는 당위로서가 아니라, 체험으로서, 현실로서.
이게 의문이었다.
왜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유년기, 부모님, 언니, 날 때부터의 성향, 친구들, 연애 등등 이리 파보고 저리 파보며 나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폭이 넓어져도 저 의문만큼은 풀리지 않았다.
열심히 살고 싶어하는 건 좋은데, 왜 그 마음이 죽음으로부터 출발했을까.
엊그제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갑자기 퍼즐이 맞춰졌다. 여기서부턴 참 풀어내기 어려운데..어쨌든 해보면..
난 삶의 끝을 생각해두지 않는 게 싫었다.
그건 역설적이게도 언젠가 끝나버릴 거란 사실이 주는 공포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끝나, 끝나' 다독여줘야
그제야 용기를 내어 기뻐하고 욕망하고 뛰어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건
다시 보면
내가 그만큼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다.
손에 쥐어진 사탕이 없어질까봐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사탕은 결국은 다 없어지는 거야,라고 다독여줘야 그제야 용기를 내어 맛보고 기뻐하는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는 사탕의 맛을 한톨도 놓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렸다. "맛은 있지만, 눈물이 계속 흘러요."라고 아이가 말했다. 내 마음 속에서.
아이는 사탕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난
분명
사탕을 입에 넣고 맛을 보면서도
천천히 녹아 사라진다는 사실에 너무 슬퍼만 하고 있던 건 아닐까.
시간에 대해 예민한 것도
사탕이 얼마나 녹고 있는지 끊임없이 체크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추억을 의미있게 여겨왔던 건
사라진 사탕이 입 안에 남긴 맛을 되새김질하며
사라진 부분에 대한 상실감을 위로할 수 있어서였고.
벼락처럼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코가 찡해졌다.
그건 틀린 생각이 아니란 신호였다.
'이런 거였구나'
생각이 직관을 겨우겨우 쫓아가 깨닫게 되었을 때
늘 코가 찡해지곤 했으니까.
그래서 뭘 어떻게 살겠다는 다부진 결심이 생기거나, 24시간 마음에 사랑이 넘치는 상태로 하하호호 살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큰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내게 사탕을 주었는지 생각해보고, 사탕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해하기.
그리고
"맛있다"라고 말하며 울지 말기.
"맛있다"라고 말하며 기뻐 하기.
아침에 눈을 뜨니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지난 부산영화제 때 예매까지 해놓고 (데스크의 변심으로 출장이 2박3일에서 1박2일로 줄어드는 바람에) 못본 <콘트롤>을 볼까, 재개봉한 <아비정전>을 볼까 고민하다 <아비정전>을 보기로 선택했다.
장국영 추모 6주년을 기념해 재개봉했다는데
난 장국영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보다는 19년 전의 장만옥을 보러 극장에 갔다.
아침 10시 35분, 스폰지하우스 중앙.
이 시간에 극장에 온 게 얼마만이던가 기억을 되짚어봐도 직전 조조영화의 기억이 한톨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10년 쯤 되었을 거야, 감격하면서 표를 사는데 가격 4천원. "우와" 통제할 겨를도 없이 내 입에서 저런 감탄사가 툭 튀어나와 버렸다. 창피하게. 누군가에겐 '조조영화=4천원'이 당위겠지만, 그 순간 나에겐 축복 그 비슷했다. 10년간 미뤄두었던 축복을 받으며 <아비정전>을 보았다.
<아비정전>을 보는 내내 나는 울컥 울컥 솟는 반발심을 다스려야 했다.
'제발 아름답게 보여주지 마. 내 눈을 홀리지 마. 저렇게 허우적거리는 게, 싸지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저 혼돈이, 자기파괴적인 게 어디가 아름답니? 왕가위, 이 탐미주의자. 지독해. 지독해.' 뭐 이런 생각들이 계~속 이어졌달까.
왕가위가 감각을(때론 감각만) 자극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알고, 그의 작품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아마 내가 변했기 때문일 거다.
많은 영화들에서 혼돈 속의 청춘을 아름답게 그린다. 거칠고, 갑갑하고, 타인은 커녕 자신과의 대화도 하기 버거운 그런 불능의 상태를 아름답다고 추켜세운다. 그런 상태로 (아비처럼)돌연 죽기라도 하면, 혹여나 그게 자살이라면 선망이 커져 '아이콘'화 된다.
예전엔 나도 그런 드라마틱한 삶과 객기와 충동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정제되지 않은 파열음이 역설적으로 가장 에너제틱한 삶의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일면 멋있는 부분이 있긴 하다. 고리타분한 가치들을 전복시킬 때나 계산없이 달려드는 열정 같은 걸 볼 땐, 여전히.
그러나
아비는, 매우 미안하지만, 그리고 안타깝지만, 찌질하다.
친어머니와 양어머니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생긴 원초적인 결핍. 아비같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쉽게 말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비는 너무 니힐리스트다. 너무 갔다. (아니, 아비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정확히 말하면 왕가위가 너무 니힐리스트고 너무 간 것 같다.)
아비는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돈이 있고, 쉽게 얻은 돈으로 뭐든 쉽게 산다(buy). 여자의 마음도 쉽게 얻는다. 타인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의 무게감을 모르기 때문에 거침없이 다가간다. 그래서 두발이 땅에 굳건히 붙어있는 장만옥 같은 여자가 오히려 홀딱 넘어간다. 헤어지는 것도 쉽다. 여자가 못 버티고 나가 떨어지면 문 닫고 바이바이. 주변 사람들에겐 늘 민폐다.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아냐'며 목숨 내놓고 다니니까 '삶에 대한 성의와 인지상정'이 있는 경찰(유덕화)이 대신 칼맞는다. '내 것, 내가 가졌다, 내가 아낀다...'이런 애착이 없다. 그렇게 길러질 수 밖에 없었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래서 아비의 눈은 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허공 어딘가에서 답을 찾는다.
필리핀으로 친어머니를 찾으러 갔다 퇴짜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만약 친어머니가 만나주었더라면, 아비가 달라질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아니었을 것 같다. 친어머니가 만나주었더라도 아비는 그렇게 기차 안에서 죽었을 거다. 아마도.
왕가위가 못마땅한 건 이 때문이다.
'이래도 저래도 난 이 허무 안에서 벗어날 수 없어.이 안에서는 죽음도 유별난 사건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걸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들다니, 괘씸해. 정말.
#2
영화를 보고 치료를 받으러 한의원에 갔다. 물리치료실에 누워 전기치료를 받는데, 힐끗 옆으로 어떤 기계 위에서 '운동' 중인 아저씨가 보였다. 누워 있으면 상반신 쪽 침대 양쪽이 아래위로 움직여 허리 근육을 풀어주는 기계.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자의와 상관없이 '또르르' 굴러 다니게 되는 기계라, 살짝쿵 민망한 기분에 빠져들게 되는 그런 기계다. 그 위에서 성의가 가득 찬, 온전히 집중한 표정으로 운동에 임하고 있는 그 분을 보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적합한 연상인지 모르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서 '귀여운 페이스, 진지한 눈빛으로 교미 중인 다람쥐' 사진을 봤을 때 느꼈던 기분이 생각났다.
"어이구~ 그랬어요? 잘하고 있어요"라고, 애정 담긴 손길로 엉덩이 툭툭 때리면서 말하고 싶은 그런 기분. 삶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이 예뻐서, 대견해서...
따땃하게 뎁힌 전기치료기 위에서 잠깐 생각했다.
한의원에서 열심히 치료받는 아저씨에게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해
눈을 홀리게 표현해내는 영화가 나오면 참 좋겠다고.
#3
얼마 전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맞춰지지 않는 퍼즐 한 조각이 있었다.
일기장과 읽는 책에 시와 분, 초까지 적을만큼 난 매순간 충실하게 살고 싶었다. 마음에 애매하게 남아 있는 감정은 한 톨도 없길 바랐다. 그 이유는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고. "나, 아마 내일쯤 죽는다고 해도 별로 후회가 남진 않을 것 같아"라고 몇몇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늘 그런 생각이 머리 한 켠에, 작게, 그러나 끈질기게 붙어 있었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사람은 누구나 죽어'라는 당위로서가 아니라, 체험으로서, 현실로서.
이게 의문이었다.
왜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유년기, 부모님, 언니, 날 때부터의 성향, 친구들, 연애 등등 이리 파보고 저리 파보며 나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폭이 넓어져도 저 의문만큼은 풀리지 않았다.
열심히 살고 싶어하는 건 좋은데, 왜 그 마음이 죽음으로부터 출발했을까.
엊그제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갑자기 퍼즐이 맞춰졌다. 여기서부턴 참 풀어내기 어려운데..어쨌든 해보면..
난 삶의 끝을 생각해두지 않는 게 싫었다.
그건 역설적이게도 언젠가 끝나버릴 거란 사실이 주는 공포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끝나, 끝나' 다독여줘야
그제야 용기를 내어 기뻐하고 욕망하고 뛰어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건
다시 보면
내가 그만큼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다.
손에 쥐어진 사탕이 없어질까봐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사탕은 결국은 다 없어지는 거야,라고 다독여줘야 그제야 용기를 내어 맛보고 기뻐하는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는 사탕의 맛을 한톨도 놓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렸다. "맛은 있지만, 눈물이 계속 흘러요."라고 아이가 말했다. 내 마음 속에서.
아이는 사탕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난
분명
사탕을 입에 넣고 맛을 보면서도
천천히 녹아 사라진다는 사실에 너무 슬퍼만 하고 있던 건 아닐까.
시간에 대해 예민한 것도
사탕이 얼마나 녹고 있는지 끊임없이 체크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추억을 의미있게 여겨왔던 건
사라진 사탕이 입 안에 남긴 맛을 되새김질하며
사라진 부분에 대한 상실감을 위로할 수 있어서였고.
벼락처럼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코가 찡해졌다.
그건 틀린 생각이 아니란 신호였다.
'이런 거였구나'
생각이 직관을 겨우겨우 쫓아가 깨닫게 되었을 때
늘 코가 찡해지곤 했으니까.
그래서 뭘 어떻게 살겠다는 다부진 결심이 생기거나, 24시간 마음에 사랑이 넘치는 상태로 하하호호 살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큰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내게 사탕을 주었는지 생각해보고, 사탕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해하기.
그리고
"맛있다"라고 말하며 울지 말기.
"맛있다"라고 말하며 기뻐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