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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웹 서핑을 하다가 <안토니아스 라인> 재개봉 소식을 알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상영까진 5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일말의 고민없이 후닥닥 씻고 입고 극장으로 가기로 선택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반가운 마음 뿐이었다.
아, 정말,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니.

<안토니아스 라인>을 처음 본 건 대학교 3학년, 세계 종교와 문화 수업 시간 때였다.
그 과목은 외부 강사님이 맡으셨던 과목인데, 그 분의 성함은 물론 수업 때 배운 다른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안토니아스 라인>을 보여주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난 그 분께 마음 깊이 감사를 보낸다.
당시에 이 영화를 보며 내가 즐겼던 감정은 '통쾌함'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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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체자 '디디'는 친오빠 '피트'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안토니아의 딸 다니엘이 삼지창을 던져 디디를 구해 안토니아의 집으로 데려오고. 피트는 영화 후반 군인이 되어 마을에 돌아오는데, '힘으로 다른 사람들 굴종시키는 걸 좋아하는, 남자 세계의 질서'를 대변하는 인물로 보였다.>


보통의 마을 사람들처럼 살지 않아도 행복한,
아니, 오히려 마을에서 조롱당하던 정신지체자, 과부, 미혼모, 레즈비언 같은 사람들이 모여 너무나 행복하게 서로를 보듬는 모습을 보면서 '거봐. 평균적인 삶이 아니라고 해서 꼭 불행한 건 아니라구.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딱딱한 생각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니까.'라는 류의 생각을 했고, 이 영화에서 희망 그 비슷한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안토니아가 (고해성사실에선 여신도를 더듬고, 설교할 땐 "음탕함이 어쩌고..."하는) 위선적인 신부의 약점을 잡아 굴복시키는 장면이나
나중에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바스'가 안토니아에게 청혼 할 때 바스의 다섯 아들들에게 엄마가 필요하자고 하자
"나에겐 아들이 필요없는데요. 남편이요? 남편은 어디에 써먹나요. 그냥 가끔 들러 우리끼리 하기 힘든 일을 도와주세요. 난 신선한 달걀, 우유와 빵, 채소를 줄게요"라고 답하는 장면에서 '전복의 통쾌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던 것도 같고
본디 태어나길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질색하는 성격이라 그랬던 것도 같다.


7년의 세월이 흐른 탓인지
오늘 영화를 볼 때 마음이 가장 많이 갔던 장면은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안토니아가 밭에 씨를 뿌리고, 짚더미를 나르고, 빨래를 삶는, 그러니까 노동하는 장면들이 마음을 살며시 일렁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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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아가 마련한 유토피아에 모여든 여자들은 모두 함께 농사를 짓고, 일과 살림을 한다. 물론 바스와 그의 아들들도 이 공동체에 끼어있긴 하지만 '한가로이 노는 여자'는 영화에서 한번도 볼 수가 없다.>


관습이라고 무작정 배격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관습(그걸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한지도 모르게 만드는 관습)을 골라내는 시각을 갖추고, 그것을 박차고 나가는 용기를 보여주고, 심지어 자의로 혹은 타의로 그곳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을 보듬는 안토니아의 강인함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걸까..
오늘 영화를 볼 땐 그런 것들이 참 궁금했다.
영화가 하려는 말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먹고 숨쉬고 사는 것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상'이 흔들린다면 아마 안토니아가 딸과 손녀를 그런 식으로 양육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안토니아가 자신의 일상을 닦고 조이는 노동을 할 때 한번도 찌푸린 얼굴을 하거나, "아, 정말 힘들어서 못해먹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고.
물론 일상에 충실하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깨인 시각과 용기를 갖는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삶에 대한 존경심이다.

영화는 그 '삶에 대한 존경심'에 대한 이야길 풀어내기 위해 또 다른 핵심 인물 '굽은 손가락'을 등장시킨다. 그는 염세적인 성격으로 방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는 매우 박식한 할아버지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안토니아의 식구들만이 그를 아끼고 사랑한다.
디디를 성폭행했던 피트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를 대변했다면, '굽은 손가락'은 이성의 세계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굽은 손가락은 논리학, 수사학, 수학, 역사 등을 통달한 할아버지다. 그는 자주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우연'의 결과라는 걸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태어나  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이 나아질 거란 예상을 할 수 없고, '희망하는 오류'라는 건 종교를 가져야 생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종교라는 것도 인류의 역사를 보아하니 세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을 뿐이니 이 세상이 고통 그 자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영화 후반부 그는 결국 "더 이상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한다.

흥미로운 건
안토니아의 손녀 '테레사'가 3-4살 때부터 '굽은 손가락'과 이런 류의 대화를 나누며, 그의 사상을 이해했고 '수학과 음악의 천재'로 길러졌다는 점이다.
테레사는 스무살이 되어 임신을 하게 되는데
'굽은 손가락'은 "아이를 낳는다는 건 너의 이기심의 발현이야. 그 아이에게 이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니?"라며 절대 반대(거의 비난)한다. 그런데 테레사는 고민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테레사는 굽은 손가락처럼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기도 했지만, 안토니아의 손녀이기도 했다. 굽은 손가락식의 세계관과 안토니아식의 세계관을 모두 경험한 테레사가 안토니아식의 세계관에 손을 들어줬다는 게 참 흥미로웠다.
이 지점에서 난 '테레사의 거수'가 곧 '감독의 거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마를렌 고리스는
삶에 대한 존경심은 '삶에 대한 사유들'에 파묻혀서는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안토니아처럼 자신의 두 팔과 두 발로 직접 살아야 한다. 중요한 건 그거다. (위에서 말한 일상의 노동씬들이 내 마음에 다가왔던 건 이런 맥락에서였다.)

영화를 보다 목이 울컥, 코가 찡했던 장면이 하나 있었다.
안토니아가 증손녀 사라와 말을 타고 가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죽은 뒤 사라가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자
안토니아는 "영원히 죽는 것은 없어.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반드시 무언가가 남는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것이 태어나. 그게 인생이야"라고 답하며, 삶이라는 건 살아있으려는 것 그 자체라고 가르쳐준다.

난 사회적으로 명망있고 거창한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예전부터 없었고
매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꿈이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사랑하려면 내 마음 속에 꼬여있는 게 (아예 없을 순 없고) 최대한 없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엄마가 되기 전, '엉킨 곳 풀기'를 많이 해두려고 노력하고 있고.
물론 그것도 안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많이 해놓아도 막상 엄마가 되면 '엉킴 핵폭탄' 같은 게 다가올 거란 걸. 그리고 그걸 견디는 건 어마어마한 고행일 거란 걸. 그리고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거란 것도. 다 아는데, 겁은 나는데, 그래도 하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결혼이란 걸 해보지 않아서 용감하게 말하는 걸 수도 있는데, 어쩌나..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내가 좋은 엄마란 말을 쓸 때, 그 '좋은'이 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한다면
아마 안토니아와 매우 비슷한 모습일 것 같다.
응, 맞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안토니아 같은 여자이자 엄마이자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의 선택.
앞으로 살면서 본의 아니게 침범당하거나, 꿈을 실현하는 게 너무나 버거워서 '몰라 몰라. 좋은 엄마는 무슨. 다 그냥 이러고 사는 거야.'란 포기의 순간이 찾아올수도 있을 거다. 내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무기력해지고 마음 약해지는 건 괜찮다. 영화는 영화고,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나는 안토니아가 아니니까. 그러나 상황 탓하며 내 안의 안토니아를 부정하지는 않기로 선택했다.

오늘의 선택 추가.
요즘 포스팅 길이가 장난 아니게 길어진다.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 걸텐데.. 앞서 굽은 손가락 할아버지 얘기에서 말했듯 생각만 많이 하는 건 옳지 않다. ㅋ 자꾸 보고, 느끼고, 몸을 써야지. 그런 맥락에서 <안토니아스 라인> 예고편을 몇몇 친구들에게 보라고 덧붙인다.




2009/04/26 22:06 2009/04/2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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