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토니아스 라인>을 보러 시네큐브에 갔을 때, '개봉하면 꼭 봐야지' 생각했던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의 유료시사회에 참석하기로 선택했다. 영화도 영화였지만, 상영 후 '진중권 교수와의 시네토크' 순서가 있다기에 고민없이 내린 선택.

영화는 좋았다. 감독이 80대라던데, 영화만 보곤 80대 노인이 만들었다는 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박력과 감각이 대단했다. 연출, 연기도 좋았지만, 가장 경이로웠던 건 각본이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지? 풍선을 불 때 터지기 직전에 느끼는 그런 류의 긴장감이 내내 느껴진다.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으로 쇼크를 주거나, '곧 일이 터질 거야' 암시하는 음악을 깔지 않아도, 오로지 서사의 힘만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동생 행크(에단 호크)를 그 지경으로 몰고 간 원인이
매우 작은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거다.
(미국 사회가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라고도 하던데, 내가 보기엔 사회적인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영화라기 보단, '개인의 충족되지 못한 작은, 그러나 원초적인 욕망이 얼마나 큰 재앙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같았다. 물론 그 욕망을 왜 충족시키지 못했느냐를 따지고 들어가면 사회 탓을 해야할 시점이 찾아오긴 할 거다. 근데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주인공의 삶을 통해 '여기에 사회 탓은 없을까?'라고 이야기 거리만 던져주고, 그 영역은 열어두는 게 '재미'면에서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악마가...>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 같다.)

다시 작은 욕망으로 돌아가서.
앤디는 아내와의 섹스라이프에 문제가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땐 마약으로 도피한다. 마약 때문에 돈이 필요해 분식 회계를 했는데, 감사를 받게 되어 그걸 메워넣을 목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면의 가장 안쪽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것, 아버지가 동생 행크만 걱정하고 챙긴 것에 대한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내가 느끼기엔 이 상처에서 나오는 고름이 점점 바깥으로 스며나와 일을 만든 것 같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지, 마음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면서 섹스가 잘 됐던 '리오'로 이민가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 것이나
단호하고 강한 장남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마약을 찔러넣지 않으면 작은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하는 약한 모습이 있고, 그 약한 모습은 부모, 아내, 동생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도
유년기 상처의 고름이 배어나와 만들어진 모습인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시작된
아내와의 문제나 마약 문제가
다시 바깥으로 배어나와
가장 껍데기에 보이는 문제는 돈이지만, 돈이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근데 과연
가족구성원의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100% 건강하게 채워주는 가정이라는 게 존재할까?
혹시 모든 가정 안에는 이미 비극의 씨앗이 심어있다,고 말하는 영화인가? 잠시 생각해봤는데, 이건 확실히 모르겠다. 가족은, 아무리 행복해보이는 가정이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를 주고 받기 마련인데, 그럼 밖으로 고름이 배어나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상처라는 게 강수량 재듯 수치화해서 '고름이 15mm 고였으니, 섹스라이프에 문제가 생기겠군요' 말할 순 없는 거고.
지금까지 생각의 결론으론
모든 가정 안에는 이미 비극의 씨앗이 심어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게 진짜 비극으로 자랄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른다. 개인의 성장사에 달린 문제다. 그리고 모든 가정 안에는 비극의 씨앗이 있지만, 비극의 씨앗만 있는 건 아니다,는 게 지금의 생각.
써놓고 보니 당연한 얘기다.

#3
<악마가...>의 훌륭한 점은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도 저 정도의 결핍은 느끼는데'라고 공감할만한
작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하면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는지
그리고
상황이 더 큰 상황을 어떻게 불러오는지 보여주는데, 그게 너무나 설득력 있다는 데 있다.
내 마음에 어떤 씨앗들이 뿌려져 있는지, 그 중 어떤 것을 골라 키울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지 않으면 앤디와 행크 형제처럼 몰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면에서 무섭고 섬뜻한 영화다.

전대미문의 가족잔혹사를 만든 앤디는 그저 아빠의 사랑을 원했을 뿐이다.

#4
진중권 아저씨의 짤막한 강의는 본인이 창피해하신대로, 별게 없었다.
이 영화가 얼마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지, <시학>에 나온 원리들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 설명해준 정도.
평균보다 약간 착한 주인공이
사소한 결점 때문에 몰락해가는 게 훌륭한 비극이고
훌륭한 비극은 '공포와 연민 효과'를 일으키는데
이 작품이 딱 그렇다,는 얘기였다.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감독이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바람에
조금 실망했다.
이후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관객의 질문이 쏟아졌는데, 미리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은 안해보셨던지, 똑 부러진 견해는 듣지 못했다.

재밌었던 사건 하나는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밝힌 사람이 "돈 문제라기보다는(진중권 교수는 돈 문제라고 가볍게 넘어갔다)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내 생각과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것에 대해 진중권 교수가 "그 부분은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조금 놓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고, 이후 스스로 직장인이라고 밝힌 여자가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 내 주변에도 많다. 확실히 부모님 돈 받아쓰는 사람과 직접 버는 사람과는 생각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안드로메다급으로 유치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빵 터졌던 순간이 있었다.

마지막 질문자가 굉장히 센스있고 탁월한 질문을 해서 진중권 교수로부터 '건질 말'을 얻었다.
영화의 주인공이 치밀하게 계획을 짰으나 살짝 엇나간 우연 때문에 어마어마한 몰락으로 빠져드는데, 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계획대로 온 것 같은지 아니면 우연의 산물인 것 같은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한 답을 하다
그가
"우연에는 용기를!"이란 말을 썼는데
요게 마음 속에 콕, 박혔다.
우연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용기를 내서 그 게임에 동참하기. 오늘의 선택.
아, 또 한가지 중요한 오늘의 선택. 작지만 원초적인 욕망들을 잘 돌보기.




2009/05/08 03:28 2009/05/08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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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ng2 2009/05/08 16:5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빨래를 개면서 영화 소개 방송을 보다가
    이 영화가 나왔는데 말야
    점점 밝혀지는 스토리들을 보면서, 아놔- 라고 욕을 해버렸어
    응, 이렇게 내가 아는 걸
    영상으로 보는 건 참 괴로운 일이구나 싶어서 후훗

    •  address  modify / delete 2009/05/08 23:18 radioheadian

      그니까, 있을 법한 이야기라 더 무섭다니까. 재미는 있는데, 보기 편치 않은 건 확실해. 그리고 내 사랑 에단호크가 너무 찌드셔서(연기를 잘 해서 그렇게 보인 것 같지만은 않어. 확실히 심적으로 쪼이면서 나이 먹은 게 얼굴에 보이더라) 마음 아파 하느라 불편하기도 했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