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이란 책을 읽고 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명품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한 책.
베르나르 아르노가 어떻게 LVMH를 집어 삼켰는지, 그 방법이 얼마나 못되쳐먹었는지
톰 포드와 피노회장이 아르노의 손아귀에서 구찌를 지켜낸 사건이 얼마나 드라마틱했는지
평생 단 하루도 일한 적이 없는 미우치우 프라다의 공산주의 페미니스트적 성향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왜 명품 브랜드들이 일본소비자를 잡기 위해 안달인지
샤넬 No.5를 만들고도 소유권과 권리를 빼앗겨버린 코코 샤넬이 얼마나 악착같이 그 권리를 되찾으려 노력했는지
2천만원짜리 에르메스 핸드백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

명품 브랜드의 시초가 된 수공업 장인 집안의 복잡한 가계도부터 각 브랜드의 인수 합병 과정, 어느 브랜드가 어느 브랜드의 지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등등 '역사'의 흐름과
샤넬 No.5에만 독점 공급하는 장미를 키우는 농장, 각종 연구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디오르 매장이나 에르메스 작업장 등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그 모습을 묘사한 '현실'에 대한 분석이
둘 다 빵빵하게 담겨 있어서
재미도 있고,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명품 브랜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노선도 나름 생긴다.

이 책을 구입해 읽게 된 것은 사실 전적으로 작가 소개글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탐나는 프로필이 존재하다니..

데이나 토마스
12년동안 <뉴스위크> 파리지국에서 문화 패션 담당기자로 활동했다. 1994년 이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 스타일에 관한 글을 썼고, <뉴요커><하퍼스 바자><보그><워싱턴 포스트><파이낸셜 타임스> 런던지국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기사를 썼다. 현재 호주판 <하퍼스 바자>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파리의 앵글로아메리칸 언론협회와 해외언론협회의 회원으로 있다. 1996~1999년까지 파리 아메리칸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했으며, 1987년 시그마델타치재단 장학금을 받았고 엘리스 홀러 최우수기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남편 에르베와 여섯 살 난 딸 루시 리와 함께 파리에 살고 있다.


프로필을 읽다가
'아, 에디터로서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동경하게 되었다.
왜 우리나라에선 패션지 기자가 '저널리스트'가 될 수 없는 걸까? 칼럼니스트처럼 활동하는 패션지 기자는 참 많이 보았지만, 저널리스트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보도 자료 받아서 쓰는 기사 말고, 취재원 입에서 나온 말을 받아 재가공하는 기사 말고, 어떤 물건이나 사건에 대한 자신의 품평 말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차근차근 취재해 쓰는 기사. 하루살이처럼 마감에 허덕이는 지금 같은 시스템 안에서는 나올 리가 없다.

특히 로컬지를 베이스로 한 우리 회사의 경우는
1년 플랜을 짜서 메가 이슈 아이템을 미리미리 결정해 선진행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템 회의를 할 때
"이건 좀 공을 들여서 12월쯤 내보내면 좋겠다" 말하면 "오, 그래. 좋은 아이디어야"라고 리액션을 하고도
유야무야 배당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우선 해봐. 기사가 나갈지 말지는 그 때 가봐서 얘기하자고'의 느낌이랄까.
기자가 열의가 있다면 알아서 틈틈이 진행해놓겠지만
당장 이번 달 배당받은 기사 막기도 벅차니까, 시간에 쫓기다 쫓기다 '아,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러면서 마음 속에서 자체 드롭을 하게 된다.
현재 우리 책이 유일하게 '선진행'에 공을 들이는 기사는 스타 아이템이다.
요즘 연예인 잡기가 너~무 어려워서, 미리미리 찔러놓지 않으면 스타님을 모실 수가 없다. <보그><바자>까지도 연예인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좀 색다르게 스타를 모시기 위한 방편으로 영화감독을 끼고 배우를 섭외해 단편영화+화보 촬영을 하는 기획이 요즘은 잘 팔린다.
그런 단편영화+화보는 거의 브랜드 협찬으로 돈을 대어서 진행하기 때문에 PPL과 난해한 이미지가 난무하는 '뭥미?' 화보로 변질될 때가 많다.

에디터 입장에서 그런 화보를 볼 때는
'섭외하느라 고생이 많다' '저 장소는 다 어떻게 해결한 걸까' '브랜드 협찬은 페이지당 단가가 얼마 였을까' 등등 담당 에디터가 기울인 노고의 흔적을 찾게 된다.
하지만 매달 꼬박꼬박 잡지를 보는(사실 모니터링 차원에서 보는 거지만, 어쨌든) 독자 입장에서는
'저런 뻘짓 이제 그만 하고 진짜 멋지고 골져스한 저널리스트를 키워주는 기사 좀 만들지!' 란 생각도 든다.

입사하자마자 <보그>인가<바자>에서 1년짜리 프로젝트로 매달 '한국 패션사'를 연재했던 걸 진짜 재밌게 읽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그런 기사가 존재했는데..요샌 '아, 진짜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피처 기사를 만나기 힘들다. <싱글즈>에서 종종 '아, 정말 시기적절하다!' 감탄하게 되는 피처 아이템은 보긴 하지만.
애들이 지금 딱 궁금해하는 걸 긁어주는 피처기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숙명을 지닌 곳에서 일하려니,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내 관심사와 내가 써야하는 기사의 관심사의 갭이 커진다. 이번 달도 피처팀 배당을 두고 편집장과 신경전을 벌였다. 처음으로 정색하고 대들기도 하고.

내일부터 진짜 미친듯 일이 쏟아질 거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일요일 밤.
꿈같은 일을 해낸 누군가의 책을 핑계로 주저리주저리 넋두리만 늘어놓게 된다.


2009/06/28 20:54 2009/06/28 20:54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