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1Q84>

from Library 2009/09/21 03:39
"하나의 사물은 하나의 시간에 하나의 장소에만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이 증명했다. 현실이란 한없이 냉철하고 한없이 고독한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머리 길이는, 일주일 전쯤 이발소에 갔어야 하는데, 라는 정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십대 소녀 대부분이 그렇듯이 표정에는 생활의 냄새가 결여되어 있었다."

"덴고는 말했다. "소설을 쓸 때, 나는 언어를 사용하여 내 주위의 풍경을 내게 보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치환해나가. 즉 재구성을 해. 그렇게 하는 것으로 나라는 인간이 이 세계에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그건 수학의 세계에 있을 때와는 상당히 다른 작업이야"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후카에리는 말했다."

"뭔가가 작은 빈틈으로 들어와 그의 내면에 있는 공백을 채우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후카에리가 만들어낸 공백이 아니다. 덴고의 내면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거기에 특수한 빛을 들이대 새삼 비춰낸 것이다."

"만일 인구조사에 대머리라는 항목이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거기에 체크가 될 거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길어진다. 또한 그것은 일단 말로 해버리면 가장 중요한 뉘앙스를 잃어버리는 종류의 일이었다."

"나비는 그 무엇보다도 허망하고 우아한 생물이랍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게 태어나 한정된 아주 조금의 것만을 조용히 원하고, 이윽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살그머니 사라져요."

"그는 비좁은 세계에서 협량한 룰에 따라 꾸역꾸역 살아가면서도..."

"...아오마메는 자기 안에 있는 다마키를 향해 말을 건넸다. 너는 특별한 존재야. 나는 너와 함께 성장해왔는걸. 다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어"

"달은 누구보다 오래도록 지구의 모습을 근거리에서 보아왔다. 아마도 이 지상에서 일어난 현상이며 행위 모두를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은 침묵한 채 말을 하지 않는다. 한없이 차갑게, 적확하게, 무거운 과거를 품어안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는 공기도 없고 바람도 없다. 진공은 기억을 아무 상처없이 보존하기에 적합하다. 어느 누구도 그런 달의 마음을 풀어낼 수 없다. 아오마메는 달을 향해 잔을 치켜들었다.
  "요즘 누군가와 껴안고 자본 적 있어?" 아오마메는 달에게 물었다.
  달은 대답하지 않았다.
  "친구는 있어?" 아오마메는 물었다.
  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쿨하게 살아가는 거, 이따금 피곤하지 않아?"
  달은 대답하지 않았다.

"유전자 입장에서는 인간이란 결국 단순한 탈것에 불과하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건 에리야.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것은 움직일 필요가 없어. 움직이는 건 그 주위의 모든 것이지"

"후카에리와 대화할 때면 이따금 이렇게 된다. 자신이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 했는지, 문득 흐름을 잃어버린다. 갑작스레 강한 바람이 불어와 연주하던 악보를 날려버리듯이"

"초경 전의 소녀를 범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남자, 기골이 장대한 게이 경호원, 수혈을 거부하며 스스로 죽어가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 임신 육 개월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는 여자, 문제 있는 사내들의 뒷덜미에 날카로운 침을 꽂아 살해하는 여자,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 남자를 증오하는 여자들. 그런 사람들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과연 유전자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유전자들은 그런 굴절된 에피소드를 컬러풀한 자극으로서 실컷 즐기고, 혹은 뭔가 또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일까.
  아오마메는 알지 못한다. 그녀가 아는 것은 자신은 이제 또다른 인생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 정도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반품하고 새 것으로 바꿔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아무리 기묘한 것일지라도, 일그러진 것일지라도, 그것이 나라는 탈것의 존재방식이다."


"우리의 기억은 개인적인 기억과 집단의 기억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거야" 덴고는 말했다. "그 두가지 기억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지. 그리고 역사라는 건 집단의 기억을 말하는 거야. 그것을 빼앗으면, 혹은 고쳐 쓰면 우리는 정당한 인격을 유지할 수 없어"


"이 기억은 너라는 인간을 규정하고, 너의 인생의 형태를 만들고, 너를 어느 정해진 장소로 밀어내려고 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네가 이 힘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라고."

"그들의 시간과 공간과 가능성의 관념 속에는 도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혹 불편하기는 하더라도, 그들은 도로를 걸어가는 것보다 밀림 속을 은밀히 헤치고 갈 때 그들 자신의 존재 의의를 보다 명확히 포착할 수 있는 것이리라."

"세계라는 건 말이지, 아오마메 씨,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야"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지만, 그것을 입에 올리면 거기에 포함된 사실이 사실로서 보다 확고해져버릴지도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고 싶다, 그런 심정이 담긴 침묵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야. 여긴 터진 틈과 부정합성과 안티클라이맥스로 가득한 현실세계야."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면, 다른 어디에서 현실을 찾아야 할지 그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선은 이것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어떻게든 이 현실을 살아낼 뿐이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아오마메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두려운 것은 현실이 나를 따돌리는 것이다. 현실이 나를 두고 가버리는 것이다."

"덴고가 해야 할 일은 아마도 현재라는 교차로에 서서 과거를 성실히 응시하고, 그 과거를 바꿔 쓸 수 있는 미래를 차곡차곡 써나가는 것이리라."

"그녀는 그 치명적인 결락을 에워싸듯이 자신이라는 인간을 꾸며내야 했다. 그렇게 꾸며낸 장식적인 자아를 하나하나 벗겨나가면, 그뒤에 남는 것은 무의 심연밖에 없다. 그것이 몰고 온 격렬한 건조함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잊으려 애를 써도 그 무의 심연을 정기적으로 그녀를 찾아왔다. 혼자 있는 비 내리는 오후에, 혹은 악몽을 꾸다가 눈이 떠진 새벽녘에."

"아유미는 치명적인 소용돌이의 중심을 향해 완만한, 하지만 어떻게도 피할 수 없는 접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마음먹고 좀더 따스하게 받아주었다 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우는 건 그만두자."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무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아니면 이 남자가 품고 있는 감정이 진공 같은 역할을 해서 주위의 모든 음파를 흡수해버리는지도 모른다."

"그 박동을 듣고 있는 사이에 자신이 비열한 도적이 되어 한밤중에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이란 내 안에 잠재된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그것을 더듬어온 작업에 지나지 않는 걸까."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은 진언 같은 것이다, 덴고는 생각했다. 이런 문구를 외우는 것으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온 것이다. 덴고는 그 고집스러운 부적을 돌파해야 했다. 그 울타리 깊숙한 곳에서 살아 있는 한 인간을 끌어내야 한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을 들어도 모르는 것이다."

"마음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일 따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아."

"세계가 '비참한 것'과 '기쁨이 결여된 것' 사이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제각각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작은 세계의 한없는 집적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창밖의 풍경은 보여주고 있었다."

"너의 사랑이 없다면 이건 그저 싸구려 연극에 지나지 않아. 이 노래를 알고 있나?"
  "<It's Only a Paper Moon>"
  "그래 1984년도, 1Q84년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요소를 갖고 있어. 자네가 그 세계를 믿지 않는다면, 또한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모든 건 가짜에 지나지 않아."


'그림자는 우리 인간이 전향적인 존재인 것과 똑같은 만큼 비뚤어진 존재이다. 우리가 선량하고 우수하며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림자 쪽에서는 어둡고 비뚤어지고 파괴적으로 되어가려는 의지가 뚜렷해진다. 인간이 스스로의 용량을 뛰어넘어 완전해지고자 할 때, 그림자는 지옥에 내려가 악마가 된다. 왜냐하면 이 자연계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과 똑같은 만큼의 깊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덴고는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 질문과, 갈 곳 없는 발기를 떠안은 채 후카에리의 몸을 머뭇머뭇 계속 안고 있었다."

"1Q84년은 베이면 피가 나는 현실세계다. 아픔은 어디까지나 아픔이고, 공포는 어디까지나 공포다. 하늘에 걸린 달은 연극 소품이 아니다. 진짜 달이다. 진짜 한 쌍의 달. 그리고 이 세계에서 나는 덴고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가짜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인간의 피부세포는 매일 4천만 개씩 죽는다는 사실을 덴고는 문득 떠올렸다. 그것들은 죽어서 떨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져간다. 우리는 어쩌면 이 세계의 피부세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어느 날 문득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마도 내가 길을 너무 멀리 돌아온 거 같아. 그 아오마메라는 이름의 여자애는, 뭐랄까, 오래도록 변함없이 내 의식의 중심에 있었어. 나라는 존재의 중요한 누름돌 역할을 해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게 너무도 내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 의미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거 같아"

"하지만 이제야 겨우 알겠어. 그녀는 개념도 아니고 상징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야. 따스한 육체와 살아 움직이는 영혼을 가진 현실의 존재야. 그리고 그 온기와 움직임은 내가 놓쳐서는 안될 것이었어. 그런 너무나 당연한 일을 이해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어."

"달의 반짝임을 무심히 바라보는 사이에 덴고 안에 고대로부터 이어져내려온 기억 같은 것이 차례차례 불려나왔다. 인류가 불이며 도구며 언어를 손에 넣기 전부터 달은 변함없이 사람들 편이었다. 그것은 하늘이 준 등불로서 때로는 암헉의 세계를 환하게 비추어 사람들의 공포심을 달래주었다. 그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시간관념을 부여해주었다. 달의 그같은 무상의 자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밤의 어둠이 쫓겨나버린 현재에도 인류의 유전자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집합적인 따스한 기억으로."

"게다가 이 세계에 (혹은 그 세계에) 달이 한 개밖에 없건, 두 개가 있건 세 개가 있건,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 거기에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디에 있더라도 덴고는 덴고일 뿐이다. 고유의 문제를 안고 있고, 고유의 자질을 가진 한 명의 똑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야기의 포인트는 달에 있는 게 아니다. 나 자신에 있는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거기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건 그는 달이 두 개 있는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찾아낸 것이다. 이 온기를 잊지 않는다면, 이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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