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31. 설득에 관하여

from Note 2010/05/31 23:21

#1
타고나길 누군가 '가르치려 드는 것'에 격한 거부감을 가진 탓인지
나부터도 타인에게 내 생각이나 신념을 설득하는 행위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설득하겠다는 것 자체가 몹시 자신만만한 행동처럼 느껴지도 했다.

진보신당에 들어갔던 것도
옳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내 일상을 할애하기 위해서였지
진보신당의 세를 넓혀야 한다는 각오 때문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난 이런 것들을 추구해요. 난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당신의 생각보다는 내 생각이 더 맞지 않나요?"라고 설득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었다.

어쩌면
세력을 만들어가며 남들을 설득하는 일, 그 자체에 그다지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서 혹은 용기내지 못하면서
특정 정당의 당원이 되었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긴 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상황이 오리라 예감도 했다.
그 때가 되면, 천천히, 공을 들여 설득하리라 생각했었다.


#2
오늘 친한 회사사람 6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6월 2일 투표에서 정당투표는 7번 진보신당을 뽑아달라는 내용을 적었다.

그렇게 해야겠다고 선택했다.
자연스럽게 저절로 된 게 아니라
굳이 해야겠다고 결심해서 할 수 있었다.
 
굳이 해야겠다고 이제야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에게 권해도 좋을만한 진짜 괜찮은 물건'이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나에 대한 존중감이 조금 더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에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입당이라는 정치적인 커밍아웃을 했던 것이었는데
이제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 편이 좋아"라고 말할 여유가 아주 조금 생겼달까.
이건 그만큼 내가 스스로를 믿어준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나름대로는
신념을 설득하는 행위를 처음 했던 것이어서
모두 친한 사람들이었음에도 조금 떨렸고, 많이 조심스러웠다.


#3
저녁식사 시간에 한 선배가
"나 노회찬 싫어. 그래서 진보신당 싫어해"라고 운을 떼며 지난 경험담 하나를 들려주었다.
선거홍보문자와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였는데
선배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제 겪은 일이라 그 마음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쨌든 (선배 입장에선 중요했지만, 내가 듣기엔 사소했던) 빈정상하는 사건 하나 때문에
내가 존경하는 한 사람의 의미와 행보, 약속이 싸잡아 비하당하는 걸 듣고 있자니
너무너무 불편하고 못 견디겠어서
지금이 천천히, 공을 들여 설득해야 될 때라고 생각하며
좋게 풀어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니가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내 생각은 변함 없어. 흥' 하고 덮어놓고 배척하는 선배의 마음을 열어낼 현명한 아이디어나 기지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화가 치밀어 올라서 내 마음을 달래는 것조차 벅찼다.
대꾸하기 시작하면 싸울 것 같아서
싸우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듣고 참았다.
그러고 났더니 그 사람 자체에 정이 떨어졌다. 이런 건 싫은데,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덮어놓고 비난하고 싫어하는 건 싫은데, 정이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서
타인을 설득하려고 덤벼드는 건 굉장한 애정(삐끗하면 집착. 어쨌든 상당한 에너지)을 필요로 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신경에 거슬리지 않은 영역에 치워두지 뭐'라며 잘라내는 게 아니라
굳이 내 세계로 포함시키겠다는 의지이니까.

#4
그렇다면
나는
남들을 조금 더 설득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내가 잘 알아서, 혹은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내 세계 안의 그들을 저 구석진 곳에 치워두지 않기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개지려는, 기이하고도 애틋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5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블로그에 들어와서 보니 포스팅을 거의 하지 않은 5월 동안 내 블로그의 방문객은 매일 5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설.득.이라는 것을 해야겠다면
이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가슴을 울리는 멋진 글을 쓰고 싶었지만
능력부족으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멋진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 뜨거운 맛 by 김규항 (한겨레 기고 글)

more..


2010/05/31 23:21 2010/05/31 23:21



내가 읽는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도 진작 사두었다가 이제야 다 읽었다. 사자마자 휘리릭 살펴보고 '경제 개념이 거의 탑재되지 않는 내가 읽기엔 어렵겠다'는 판단에 미뤘었는데, 막상 읽고 보니 쉽고 재미있었다. 수많은 개념과 이론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이해하기 쉬운 우화로 부연설명 해주어서 좋았다. 화법이 거침없고 통쾌해서 지루하지도 않았고.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우파가 저지르는 오류
  1) 자본주의는 자연발생적이다? | 시장은 정부 하기 나름이다 
  2) 인센티브는 중요하다? | 중요하지 않을 때만 빼고
  3) '마찰 없는 평면'의 오류 | 경쟁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4) 세금이 너무 높다? | 정부가 소비자라는 신화
  5)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 국가 경쟁력은 중요하지 않다
  6) 개인 책임이라고? | 우파는 도덕적 해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2부 좌파가 저지르는 오류
  1) 공정 가격의 오류 | 가격을 조절하려는 욕망은 자제해야 한다
  2) “정신병적” 이윤 추구? | 돈 버는 일은 나쁘지 않다
  3) 자본주의는 망하게끔 되어 있다? | 자본주의는 (겉보기와는 달리) 무너질 가망이 없다
  4) 임금을 평등하게 하자? | 어떤 직업은 여러 모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5) 부의 분배 | 왜 자본주의는 자본가를 잘 배출하지 못하는가
  6) 하향평준화 | 평등을 추구하는 방법으로는 적절치 않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자본주의가 영 탐탁치 않고 몹쓸 구석이 많아 보여서였다.
그래서 1부를 읽을 땐 '옳지. 속 시원하다' 신나게 읽었는데, 2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마주하게 됐다.
책이 '자본주의를 의심할 때 필요한 논리'들을 제공해주리라 생각했는데
'자본주의를 의심할 때 흔히 빠지는 오류'도 다루면서 "너도 무식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셈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공정 무역 상품에 대한 비판(그냥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금전적인 원조를 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누군가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기르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필요도 없는 작물을 기르도록 물건 값을 지불하기 때문)
세계화에서 (손해보는 개인은 있어도)손해보는 국가는 없다는 의견.
그리고 빈곤층을 돕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된 정책이 애초의 의도를 배반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 대한 언급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빈곤층을 돕는 게 소용없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정책 설계에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언급이었다.)
그리고 전주영화제에서 본 김동원 감독의 <행당동 사람들 2 : 또 하나의 세상>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로 추앙했던 '협동조합'이 허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기억에 남는다.

결론적으로
"빠르고 간단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에는 해피엔딩이 없다. 세상은 자본주의를 그렇게도 미워하고 의심하지만 자본주의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란 지독히도 어렵다." 라고 말한다.
이 구절이 귓가에서 웅웅대는 이유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이 불합리한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갑갑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던 그 기분,을 들춰냈기 때문이고
또 한가지
저렇게 결론내려 버리는 것이 혹시 '자본주의를 참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 영속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하는 것(옮긴이의 글 중)'은 아닐지 주저주저 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내 의견이 생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다른 관점에서 쓴 책도 필요할 것 같고.
어쨌든
책 읽기에 있어선 끈기력 없는 걸로는 서울에서 두번째 쯤 되는 내가 하룻만에 400페이지를 읽었을만큼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건 확실하다.

2010/05/07 00:37 2010/05/07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