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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만화다. 1권을 읽을 때는 침대에 삐딱하게 누워서 '뭐야. 이런 반복' 하며 심드렁하게 봤는데, 2권을 펼치고 난 뒤부턴 정자세로 앉아 100% 몰입된 상태로 책장을 넘기다가 마지막 10장쯤 남겼을 무렵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이제 상관없다.
양쪽 모두 가치는 같다.
인생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주인공의 이 마지막 대사에서 정말 펑, 하고 터져버렸다.
책에서 떼어내어 이렇게 옮겨놓고 보면 도덕교과서 속 구절처럼 뻔하게 들리는 문장인데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마지막에 저 말의 무게를 단숨에 느껴버리게, 마음을 퍽 때려버리는 작가의 능력이 경이롭다.

허구언날 밥상을 뒤엎고 경마장과 파칭코를 오가는 반백수 날건달 남편 이사오.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여기저기서 구박받고 남편 뒤치닥거리에 매일매일이 고단하지만, 이상하게도 남편을 애틋하게 사랑하고 늘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내 유키에.
'뭐 이런 이상한 관계가 다 있어?'
'완전 바보 아냐? 이런 남자랑 왜 살아?'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다가 1권 중반쯤 가면 진지하게 남편 이사오가 미워진다. 그 다음엔 아내 유키에가 한심해지고.
그런데 그 다음,
유키에 마음 속에 있는 빈 공간, 간절함이 읽힌다. 이 단계가 되면 웃다가 울컥 울컥 찡해지는 페이지가 생기기 시작한다.


각자의 삶의 방식엔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모두의 삶은 온전하다. 행복해보이는 사람이든 불행해보이는 사람이든.
이 만화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비상식, 무능, 소외, 고독, 두려움, 수치심, 버려짐...이런 감정을 끌어안고 버둥대고 견뎌내는 것. 인생의 의미에는 그런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꼴랑 두권짜리 만화책으로 이렇게 펑펑 울게 하다니.
고다 요시이에씨. 너무한 거 아닙니까.


2012/02/05 23:13 2012/02/05 23:13
  1. 리키 2012/03/06 15: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 만화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구~

"인간의 두뇌는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꽃 등 자연의 시각적 형태에서 패턴을 인식하듯 정보를 대할 때도 패턴을 인식한다. 스토리는 다름 아닌 이런 인식 가능한 패턴들이다. 또 그 패턴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는다. 스토리를 통해 주변 세상을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란 잡음 속에서 포착되는 신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몰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스토리에 참여해 나름대로 역할을 떠맡아 자신만의 스토리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소리쳐 알리려 하기보다 오히려 숨겨놓는다. '관객이 뭔가 발견하면 그걸 공유할 거라 믿었어요. 어쨌든 우리 모두 뭔가 이야깃거리가 필요하니까요'"

" '삶은 지극히 거칠고, 무한하며, 비논리적이고, 갑작스러운 데다 사납다. 반면 예술 작품은 단정하고, 한정적이며, 넘침이 없고, 이성적이며, 여유로운 데다 온화하다.' 삶은 현실이지만 예술은 허구이다. 대니얼 디포는 이미 소설이라는 형식의 허구가 예술로 인정받기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있었다. 모든 스토리는 모름지기 어느 정도 허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디포는 서문에서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라며 도리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 역시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이던 때가 있었다.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열쇠 같은 역할을 하던 시절이다. 책은 환영을 불러 일으켰다. 워낙 새로워 믿지 못할 매체라고 경계하기도 했다. <로빈슨 크루소>가 나오기 100여년 전 먼저 등장한 <돈키호테>를 보자.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이 나간 탓에 풍차에 시비를 거는 주인공."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아무리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스토리와 유대감을 키우려는 청중을 공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홀덴의 엄마를 위협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해적 행위에 맞서 싸우는 투사라 여길지 모르지만 물밀듯 밀려드는 창의성의 발현을 도둑질로 매도하며 20세기의 틀에서 허우적대는 미디어를 수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프린스와 같은 예술인은 제로섬 게임의 소품이나 다름없다. 내가 갖지 못하면 남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공유할수록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가치가 커진다면 어떨까? 그럴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비선형 내러티브는 이미 우리 머릿속에 뿌리를 내린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하이퍼텍스트로 인해 우리의 의식이 왜곡된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하이퍼텍스트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자연스레 표현하는 의식의 소산인 것일까? 내가 데이비드 린치 감독에게 왜 그토록 비선형 스토리 라인의 영화를 많이 만드느냐고 물었을 때도 결국은 대화가 이 문제로 귀결되었다.
'요즘 우리 삶의 본질이잖아요.' 린치의 답변이었다.
'언젠가 이라크에도 가고 파키스탄이나 뉴욕에 가기도 합니다. 차 안에 있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니 온갖 추억들이 일순 몰려들고 눈앞엔 새들이 날아다니지요. 그 순간 나의 어느 한 부분은 세계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런 생각이 지금 하는 일에 영향을 주는 겁니다.'"

" '우린 그걸 기억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기억이나 상상을 통해 그림이 그려집니다. 북아일랜드에서 봤던 아주 사소한 것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돼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무언가로 곧바로 연결되기도 하지요. 각양각색의 것들이 흘러다니는 겁니다. 그걸 모두 합치면 대단히 정신 사나운 영화가 되겠지요.'
예상 밖의 사건 배열, 느닷없는 중간 생략, 순서가 뒤죽박죽인 장면들. 잠들어 있든 깨어 있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이처럼 빠르게 소멸되는 수증기와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그렇기 때문에 하이퍼텍스트는 편리한 비유이자 편리한 희생양인 것이다. 하이퍼텍스트는 1940년대에 등장한 개념이지만 1960년대나 돼서야 구체화될 수 있었고, 그사이 20년 동안이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TV를 시청하며 허비했다."

"게임 속의 결과가 좀 더 참혹할 뿐, 주위를 살피지 않고 길을 건너면 낭패를 볼 수 있는 현실 속의 삶과 다를 바 없다."

" '그러니까 골수팬들은 위키를 통해 <로스트>의 가장 불가사의한 부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주워섬기기보다는 그 부분을 잘 모르는 다른 팬들에게 그런 내용을 설명할 의무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

" '실제는 전혀 없는데도 패턴이나 연관성이 있다고 인식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 아포페니아 페이지이다. 근거 없는 이론에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연관성, 의도하지 않은 유사성, 단순한 콘티 오류 등이 집대성되어 있다. 린델로프와 큐즈가 의도하지 않는 수준으로 시청자들이 미스터리 섬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좋아하지요' 파하리아가 말을 잇는다. 사람들은 다른 것들도 좋아한다. 점수를 따거나 레벨업을 하거나 물건들을 수집한다. 특히 수집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자신들의 소장품에 구멍이 난 걸 참지 못합니다.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 "

"도요타는 사용자들이 가상 책상에 진열할 수 있는 모형 자동차를 팔기 시작했다. 마스터카드는 모든 '직원'에게 다른 물품을 살 수 있는 슈루트 보상금 200달러 상당의 '상품권'을 증정했다. 파하리아는 실제 돌아가는 상황에 적잖이 놀란 분위기이다. 'NBC는 가짜 돈을 주고 사람들에게 진짜 일을 시키는 꼴입니다' 믿기지 않는다는 투다. '게다가 마스터카드는 가짜 돈을 증정하려고 NBC에 진짜 돈을 치른 꼴이지요' 나중에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지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 '인간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감정적 레이더를 가지고 강박적으로 서로를 살펴본다.' 오클랜드 대학의 브라이언 보이드가 스토리텔링의 진화론적 기반을 연구한 <스토리의 기원>에서 한 말이다."

" '당신이라면 자신의 내집단에 누굴 포함시키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지구 전체가 자신의 내집단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에서 부당한 행동이 자행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무례한 행동을 인터넷 탓으로 돌리는 것은 난폭 운전의 책임을 고속도로 탓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DVR이 던져주는 진정한 메시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TV에서 보는 광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툭툭 잘라먹는 광고를 달가워할 리 없다. 고유 판매 제안이든 브랜드 개성이든 크리에이티브 혁명이든 시청자들은 알 바 아니다. 이런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고 나면 6000억 달러 규모의 전 세계 광고 산업은 지금 형태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도 자명해진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광고를 하면서 제품을 팔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광고 업계뿐 아니라 들려줄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스토리를 들려주려면 관객을 즐겁게 해줘야 할 뿐 아니라 끌어들여 참여시키고 몰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을 위한 신호는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이다. 고집스러운 송신자와 이에 저항하는 수신자 사이에는 군비 경쟁이 고조된다. 메시지는 붉은 사슴 수컷이나 슈퍼볼 광고주들의 울부짖음처럼 갈수록 시끄럽고, 길어지며, 쓸데없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된다. 반면 협력 목적으로 사용되는 신호는 '음모의 속삭임'과도 같아서 에너지가 적게 들고 풍부한 정보를 담게 된다."

"요즘 세대는 광고주들이 뭔가 팔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광고주들도 소비자들이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아닌 척하지 말고 최대한 재미있는 광고 경험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위선적인 가면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 '학습과 중독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미시건 대학의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켄트 버리지 교수의 말이다. '워낙 밀접해서 거의 포개지다시피 하지요'"

" '동물이 뭔가 찾고 있을 때 도파민을 측정하면 상당량이 검출됩니다. 하지만 찾던 것을 발견하고 소비해버리면 도파민은 더 이상 검출되지 않아요. 목표 달성보다 그 과정에 관여하는 거지요.' 실제 성공을 거두었을 때보다 그 기대감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도 도파민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보상은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주어질 수 있다. 예측 가능한 형태로 주어지면 금세 흥미를 잃고 만다. 무작위로 주어지기도 한다. 또는 완전히 예측 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무작위적이지도 않은 어중간한 형태로 주어지기도 한다. 바로 이 세번째 패턴이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 기능을 한다."

"이런 스토리들이라면 무작위적으로 뜻밖의 상황이 속출하기 마련이다. 게임과 닮은 측면이 많은 내러티브라면(결국 만들어놓은 세상으로 사용자를 초대하는 스토리를 가리킨다) 수렵 채집 본능을 자극할 수 있다. 우리는 먹을 것, 점수, 관심, 친구, 잭팟, 해피 엔딩, 온갖 형식으로 스토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수렵 채집 활동에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몰리뉴 말마따나 '더 이상 한쪽에서만 보이는 창이 아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의 눈에 비친 세상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 '더 중요한 질문은 지능이란 무엇인가 여야지요. 인간의 현실은 지능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 '그게 가장 본질적인 거예요. 우리는 기억의 총합인 거지요. 그럼 기억이란 뭘까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왜 그리 소중한 걸까요?' "

"하사비스의 실험은 기억과 상상 간의 연관성을 확인해주었다. ... 하사비스는 기억을 위해 진화한 두뇌 구조가 상상력이 필요할 때도 동원된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합하고 상상하는 능력도 만들어낸 거지요'"

"그럼 대체 진정성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필립 K. 딕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실이란 무엇인가? 내가 누구인지 또는 누구라고 주장하는가도 현실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는 있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보면 스스로에게 진실된 상태를 뜻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라 해도 꽤나 유동적인 개념이다."

"기술은 한편으로 진정성을 의심케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성을 추구할 무기가 된다. 우리가 정말 진정성을 추구하고 싶다면 말이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단지 원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우리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진정 원하는 것은 바로 홀로데크이다. <트론>의 제프 브리지스처럼 컴퓨터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어 한다. 전혀 진짜가 아닌 무언가에 몰입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가 원했던 그대로이다."

"우리는 그 속에 몰입하길 바라면서도 허구의 것이라면 두려워한다.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에서 <로스트>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끌 만한 허구치고 몰입도가 낮은 경우는 없었다. 수 세기를 반복하면서 책, 영화, 텔레비전, 가상 세계, 어떤 매체가 되었든 새롭고 더 몰입도가 높은 미디어가 등장하면 우리는 불신을 자발적으로 중단하고 빠져들게 된다. 그럼 가장 최근에 등장한 미디어가 우리에게 우리에게 풀어내고 있는 우주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우리 또한 피할 수 없다. 허구가 현실 세계로 스며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 반대라면 어떨까? 그 모호해진 경계를 다스리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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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440페이지를 읽어내려간 책.

최고로 재미있고, 또 뭔가를 계속 자극한다. 밀도 높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느낌이랄까.

내가 왜 '새로운 도구'에 설레이고 호기심이 느껴졌는지, 이 책을 읽다보니 더 확실히 알 것 같다.

2011/11/21 23:41 2011/11/21 23:41

"콘텐츠가 많아진다는 말은 그만큼 이용하기 힘들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컨대 건초 더비 한 개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다고 가정해보자. 또 똑같은 바늘을 건초 더미 1천 개에서 찾는다고 해보자. ... 그 바늘을 단어나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일관된 문장 하나를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큐레이션은 구원자가 된다."

"그러한 트위터 스트림 속에서 우리가 수집하고 저장하고 논의해야 할 새로운 인간의 패턴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첫 번째 열쇠는 세상에서 논의할 가치가 있는 패턴을 포착해내는 큐레이터가 쥐고 있어요"

"온라인에서 말하기는 점점 쉬워지지만, 듣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콘텐츠 주변에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만들어놓고 입장료를 부과하는 게 가능했던 인터넷 이전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한마디로 터무니없어요. 그러한 시도를 계속한다면 실패하고 말걸요."

"자동화된 콘텐츠 수집과 인간 큐레이션의 차이는 한마디로 신뢰다. 독자는 인간 편집자는 믿지만 알고리즘은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독자의 믿음은 관심과 참여, 충성도로 이어진다."

"제가 젊었을 때는 편집자를 존중하지 않았어요. 부차적인 이등급 존재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중요한 것은 '잡지'가 아니라 '잡지화'예요. 웹에서 이용 가능한 각종 음악과 동영상 링크, 멋진 디자인이 함께 하는 즐거운 독서 체험 말입니다."

"사람들은 웹이 혼란스럽다고 느끼지만 서점은 그렇게 보지 않죠. 필터는 우리가 관심 없는 99퍼센트를 무시할 수 있게 해줍니다."

"문제는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과연 구글 뉴스가 <뉴욕타임즈>를 대체할 수 있을까?"

"저널리즘의 핵심은 언제나 잡음 속에서 신호를 구별해내는 것이었어요. 저는 어디든 달려가서 온갖 지루한 이야기를 들고, 사람들이 2~5분 동안 들어볼 가치가 있는 내용을 뽑아냅니다. 이것은 판단의 문제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대신 인간의 뇌는 패턴을 인식할 수 있죠."

"콘텐츠를 전략적으로 고민하면 할수록 얼마나 작업이 복잡해지는지 깨닫게 돼요. 정말 효과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낼 생각이라면 자원의 재배치와 거버넌스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해요."

"<허핑턴 포스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팔러 다니는 전문가 사회가 도래했음을 입증합니다."

"이제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관심입니다. 큐레이트할 정보를 제공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소셜 미디어는 상당 부분 데이터 증가의 주범인 동시에, 우연적이면서 목적 지향적으로 큐레이션을 지원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점점 많은 데이터를 만들고 더 많은 것을 추천하고 있다. ... 그런 면에서 보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트위터와 동일시된다. 나이키 제품을 입는 등 패션에서 표현되던 정체성이 이제는 디지털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미국의 데이터 마이닝 기업인 라플리프는 어떤 개인이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의 신용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친구가 카드 대금을 제때에 지급한다면 그도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젊어서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를 발판으로 발전해갈 기회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평생에 걸쳐 다양한 삶을 시도해가는 과정을 전부 잡아내는 기술과 함께 살아가야 해요. 이렇게 더 이상 새로운 삶을 시도하기 힘들어지는 사회적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5년 후의 웹은 분명히 모바일, 위치 정보 및 사용자 인식 기반일 것이고, 소액 결제가 주도해나갈 것이다."

"도서관은 큐레이트된 컬렉션이다. 보통은 책마다 듀이 십진분류법에 따른 번호와 정해진 자리가 있다. 그러나 이제 온라인이라는 도서관 문은 활짝 개방되었다. 그 서가에는 문학, 영화, 만화, 요리법, 택시비 영수증, 연애편지 상자, 껌 포장지, 노래 가사 등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온라인에 자료를 올리고, 그 카테고리를 분류하거나 태그를 붙이는 방식에는 아무런 기준이 없다. 데이터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이것도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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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화'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
세상의 많은 컨텐츠들이 잡지의 전달 방식과 화법을 사용한다.
(아..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오늘 잠시 열받게 만든 따라쟁이 온스타일 카카오톡이 갑자기 생각난다. 버럭 한 마디. "그 작은 아이디어까지 따라하는 거, 안 창피하니? 쫌!")

잡지쟁이가 해오던 일련의 작업들, [트렌드, 사람들 관찰 - 니즈 파악 - 기획 - 구성 - 적임자 스탭, 취재원 찾기 - 커뮤니케이션 - 예산에 맞춰 진행 - 글 쓰기 - 더 매력적이게 편집 - 카피 뽑기], 요 작업이 필요한 게 비단 출판업계만이 아니란 사실을 요즘 많이 느낀다.

에디팅을 잘 할 줄 알면 어디가도 굶어죽진 않겠다는, 나 좋을대로 해석하는 편향적인 전망과
세상 컨텐츠가 잡지화가 되고 있다며 자뻑&확대 해석하는 기지를 발휘하며...끝! ㅎㅎ




2011/10/25 00:05 2011/10/25 00:05

김어준 <닥치고 정치>

from Library 2011/10/03 14:30
"이런 태도 뒤의, 자신이 가진 걸 당연히 여기는 종류의, 진보적 엘리트 특유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공기처럼 흐르는,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 그런데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그런 작은 문장을 통해 그런 분위기를 아주 섬세하게 느껴."

"진정성이야 조국도 넘치지. 진심이 느껴지는 태도나 먹혀드는 말발의 차원이 아니라, '어, 이 사람 유불리를 안 따지네. 앗쌀한데'. 그렇게 정치인이 자신의 타고난 생김새를 드러내는 순간이 있어요. 결정적인 순간이. 그런 결정적 순간들은 말로는 뭐라 표현 못해도 사람들이 알아봐. 알아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꽂히는 거지."

"대중의 감각으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능력. 그거 정치인으로선 가장 중요한 자기 객관화야. ... 방송에서도 대중이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방송에서 날 봤을 때 내 마음에 드느냐 아니냐가 먼저 신경 쓰였던 거지. 그게 정치인으로서의 강금실이 가진 한계였고."

"그 태도를 결정하게 만드는 건 결국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해. 하나는 욕망이고, 나머지 하나는 공포야. 그게 모든 동물의 생존 방식을 결정하는 두 축이라고 봐. ... 그 공포에 대처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바로 좌, 우다. 난 그렇게 생각해. ... 자기가 강해서 획득한 자산. 그걸 남에게 뺏기지 않을 권리, 그렇게 확보한 자산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위계, 그렇게 형성된 계급의 유지, 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질서, 그 질서의 지속적 보장, 그들이 인지하는 세계에선 그런 것들이 무척 중요해지는 거지."

"정보는 그 자체로는 데이터에 불과하고 결국 어떻게 프로세스 하느냐가 중요한데, 그 처리 과정을 지배하는 게 바로 자신의 생겨먹은 기질이란 걸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는 거지."

"우가 그 공포에 압도되어 자기만이라도 살려고 반응 하는 거라면, 좌는 그 공포를 잘게 나눠 각자가 담당해야 하는 공포의 몫을 줄여서 해결하려 하는 거라고. ... 그런데 그렇게 좌가 논리적 추론을 하려면 먼저 우처럼 정서적 공포에 압도되지 않아야 하거든."

"한마디로 밥줄공안의 시대가 개막된 거지."

"그런데 문재인 같은 사람들은 그 순서가 달라. 거꾸로라고. 왜냐면 문재인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도구화할 줄 알거든. 유시민, 노무현, 이런 사람들은 어떤 상황 앞에서는 그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도구화한다고."

"인간적 욕망과 자괴를 이해해야 문제의 본질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포장에 속으면 안돼."

"삼성은 돈의 종교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경제적 메시아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한 거지. 그 과정에서 삼성은 곧 이건희라는 상징화 역시 성공시킨 거고."

"도덕적 조직적 강박이 진보 정당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야."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정신노동을 요구하는 건, 실은 스스로를 그만큼 똑똑하고 정당하다고 여겨서야. 그 정도는, 나처럼, 당연히, 구분할 수 있고, 또 구분해야만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있는 거거든. 그래서 내가 헛똑똑이들이라고 하는 거야. 자기들이 똑똑하고 정당한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정치에서 중요한 건 사람들 마음을 얻는 건데, 마음은 대단히 제한된 자원이라고.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여러 번 나눠줄 만큼 많지가 않아."

"이념은 서구의 것이되, 그걸 수행하고 주장하는 방식은 여전히 성리학자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

"그런 소리는 그냥 옳기만 한 소리라고. 옳기만 하면 뭐해. 거기에 맥락과 인간과 타이밍이 없잖아. 그런 메시지엔 아무런 힘도 없다고."

"신자유주의가 나쁘다는 건 나 역시 천만 번 동의하는데, 상대가 알아먹어야 메시지인 거지, 상대는 못 알아 먹는데 어떻게 메시지냐고. 혼잣말이지. 정치를 혼잣말로 하면 어떡해."

"자신들의 눈물겨운 노고가 상대에게 죄의식을 요구할 권리가 될 순 없다는 걸 좀 깨우치셨으면 해. 종교가 아니라 정치 좀 해줬으면 한다고. 포교 말고 연애 좀 하자고, 제발."

"정치는 상대가 날 인정해주는 게 아냐. 내가 내 존재를 스스로 입증하는 거지."

"하지만 노무현을 만나본 적도 없는 수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그리고 슬퍼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평생을 자연인으로 산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느껴졌던 거라고. 그게 연출 없이 살아내는 자의 힘이라고."

"사람들은 여의도가 얼마나 치열하고 비정한 욕망의 전장인지 잘 몰라. 그걸 모르면 그들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걸 알아야 좋은 정치인이 얼마나 드물며 그런 정치인을 드물게 발견했을 때 그들을 얼마나 아껴줘야 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말이 하고 싶었어."

"연애와 결혼은 단편적인 예일 뿐이고. 우리가 겪는 무수한 일상과 삶의 갈등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자기 바닥을 확인하는 과정, 그건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인지 받아들이고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가 되어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절차지. 그리고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자신만의 균형 감각을 획득하는 거다. ... 그래서 구체적 삶이란 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어떤 구체적 삶을 살아왔는가가 결국 그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과 그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섭해야 한다. 나는 통섭한다.(웃음) 오늘 끝."

"현재 대중의 거대한 결핍이 뭔지를 봐야지. 그것부터 받아안아야지. 당장의 요구도 받아안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20년 뒤를 이야기해."

"이념과 명분과 논리와 이익과 작전과 조직으로 무장한 정치인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보편준칙을, 담담하게, 자기 없이, 평생 지켜온 사람이 필요하다. 시대정신의 육화가 필요하다. 문재인이란 플랫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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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광화문 교보에 들렀다.

입구 앞에서 유세 중인 나경원 후보 무리와 지나쳤다. 사람들은 멀찌감치서 그 무리를 관망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악수를 하며 다가가거나 먼저 말을 거는 건 나경원이었다.

책을 구경하고 있는데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한아름 안아든 알바생이 다른 알바생에게 쑥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야, 대박. 벌써 다 나갔어."

바로 뒤이어 <닥치고 정치>를 품에 안은 커플이 지나가며 또 한마디. "오빠. 아까 여기 쌓여있던 책 다 없어졌어."

이들의 낄낄거림이 섞인 수다에서 통쾌함 같은 게 살짝 느껴졌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큭큭.

집에 와서 단숨에 완독. <칼의 노래>처럼 숨이 찰 정도로 흡입하는 힘이 있어서 중간에 덮을 수 없었다. 이건, 벼락같은 축복?

오늘, 집앞 MMMG 카페에 왔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한 커플이 아이패드로 <나는 꼼수다>를 경청 중이다.


김어준과 그의 컨텐츠를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이유가 뭘까, 그 생각을 하며 책을 발췌 정리하다보니 그의 책엔 '정치 교본' 그 이상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그걸 말로 정리하면 단순자명한 상식처럼 들리지만 그걸 실천하면서 구체적으로 살아낸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가 내뱉은 말 하나하나가 새롭게 느껴지고 생각을 환기시켜주고 영감을 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앞으로 파괴력 있는 컨텐츠는 '논리+작전+조직'보다 '맥락+인간+타이밍'의 총합으로 탄생될 거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이 분이.

이 조언이 꼭 정치판에만 필요한 건 아니니까.

게다가 정치가 내 삶하고 분리된 것도 아니니까.

이 책에서 '훌륭한 컨텐츠 기획자가 되는 법'의 힌트까지 얻어버렸네, 나는. ㅎㅎ


2011/10/03 14:30 2011/10/03 14:30
  1. thedream 2011/10/04 12:3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도 읽어봐야 겠구만.
    요즘 꼼수 폭풍 청취 중. 씨바 김어준 멋지다.



내가 읽는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도 진작 사두었다가 이제야 다 읽었다. 사자마자 휘리릭 살펴보고 '경제 개념이 거의 탑재되지 않는 내가 읽기엔 어렵겠다'는 판단에 미뤘었는데, 막상 읽고 보니 쉽고 재미있었다. 수많은 개념과 이론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이해하기 쉬운 우화로 부연설명 해주어서 좋았다. 화법이 거침없고 통쾌해서 지루하지도 않았고.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우파가 저지르는 오류
  1) 자본주의는 자연발생적이다? | 시장은 정부 하기 나름이다 
  2) 인센티브는 중요하다? | 중요하지 않을 때만 빼고
  3) '마찰 없는 평면'의 오류 | 경쟁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4) 세금이 너무 높다? | 정부가 소비자라는 신화
  5)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 국가 경쟁력은 중요하지 않다
  6) 개인 책임이라고? | 우파는 도덕적 해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2부 좌파가 저지르는 오류
  1) 공정 가격의 오류 | 가격을 조절하려는 욕망은 자제해야 한다
  2) “정신병적” 이윤 추구? | 돈 버는 일은 나쁘지 않다
  3) 자본주의는 망하게끔 되어 있다? | 자본주의는 (겉보기와는 달리) 무너질 가망이 없다
  4) 임금을 평등하게 하자? | 어떤 직업은 여러 모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5) 부의 분배 | 왜 자본주의는 자본가를 잘 배출하지 못하는가
  6) 하향평준화 | 평등을 추구하는 방법으로는 적절치 않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자본주의가 영 탐탁치 않고 몹쓸 구석이 많아 보여서였다.
그래서 1부를 읽을 땐 '옳지. 속 시원하다' 신나게 읽었는데, 2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마주하게 됐다.
책이 '자본주의를 의심할 때 필요한 논리'들을 제공해주리라 생각했는데
'자본주의를 의심할 때 흔히 빠지는 오류'도 다루면서 "너도 무식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셈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공정 무역 상품에 대한 비판(그냥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금전적인 원조를 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누군가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기르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필요도 없는 작물을 기르도록 물건 값을 지불하기 때문)
세계화에서 (손해보는 개인은 있어도)손해보는 국가는 없다는 의견.
그리고 빈곤층을 돕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된 정책이 애초의 의도를 배반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 대한 언급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빈곤층을 돕는 게 소용없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정책 설계에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언급이었다.)
그리고 전주영화제에서 본 김동원 감독의 <행당동 사람들 2 : 또 하나의 세상>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로 추앙했던 '협동조합'이 허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기억에 남는다.

결론적으로
"빠르고 간단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에는 해피엔딩이 없다. 세상은 자본주의를 그렇게도 미워하고 의심하지만 자본주의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란 지독히도 어렵다." 라고 말한다.
이 구절이 귓가에서 웅웅대는 이유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이 불합리한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갑갑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던 그 기분,을 들춰냈기 때문이고
또 한가지
저렇게 결론내려 버리는 것이 혹시 '자본주의를 참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 영속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하는 것(옮긴이의 글 중)'은 아닐지 주저주저 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내 의견이 생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다른 관점에서 쓴 책도 필요할 것 같고.
어쨌든
책 읽기에 있어선 끈기력 없는 걸로는 서울에서 두번째 쯤 되는 내가 하룻만에 400페이지를 읽었을만큼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건 확실하다.

2010/05/07 00:37 2010/05/07 00:37

수술 후 3주가 지났는데도 생각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흙길 위에서 털털털털, 부르르부르르, 먼지를 내면서 온 몸으로 시동을 걸려고 노력하는 트럭이 된 심정으로
겨우겨우 요즘 본 것들에 대해 기록한다.
어쩌면 요즘 본 것들이 너무 덩치 큰 이야기들이라 '막힘' 현상들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생각이 술술 풀려나오길 기대하기 참으로 어려운 주제들이니까. 어쨌든.


# 홍형숙 <경계도시><경계도시2>

 

퇴원하자마자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무슨 영화들을 하는지 보려고 블로그에 구경을 갔었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홍형숙 감독이 대전에 내려와 감독과의 대화를 한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고, 기대치도 않았던 행운 덕에 이 영화들과 감독의 생각들을 만났다.
1편을 DAUM에서 다운로드해서 보고 극장에 갔는데, 1편보다는 2편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1편은 송두율 교수 본인에 집중했고, 2편은 송두율 교수라는 존재를 다루는 주변의 방식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변의 방식이 결국은 우리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마음의 발을 뺄 수가 없다. 7년 전 있었던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래서 결국 나를) 들춰내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1시간 가량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정말 많은 이야길 들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감독이 "내 안에는 당연히 없으리라 여겼던 레드콤플렉스가 실제로는 있었다. 그게 강력하게 작용해서 작품의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당시엔 그저 버티고 기록하자는 심정이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스스로 몸 담고 있는 곳의 흐름에서 자신만은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나도 자주 하는 생각인데, 그게 굉장히 허약한 착각이라는 걸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나만 정신 차리고 있으면 된다, 나만 아니면 된다,라고 생각해도 자각이 닿지 않는 틈새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칫솔질 할 때 칫솔모가 잘 닿지 않는 틈새를 닦으려면 조금 더 공들이고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자각이 닿지 않는 틈새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을 들여다볼 때 조금 더 공들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 깨달음.
감독과의 대화를 듣고 나면 그 작품에 대해 뭐라 한마디 쓰기가 참으로 어려워진다는 것. 구석구석 말끔하게 설명을 들으면 내 해석이 자라날 여지가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관객에게 좋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 물론 홍형숙 감독의 이야기 자체는 완전 좋았다. 감독의 이야기가 좋았냐 나빴냐의 차원이 아니라, 영화를 텍스트 삼아 생각을 펼치고픈 욕구가 있는 관객에겐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이 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 김규항 <예수전>

나오자마자 사두었었는데, 읽긴 이제야 읽었다. 기대했던대로 재미있고 의미 깊은 책.
마르코복음(마가복음)에 기록된 인간 예수의 행적과 당시 시대상에 비춰볼 때 그 행동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해주는데, 완전 흥미진진했다. 나를 '한국 교회'에서 멀어지게 했던 거북한 면모들이 예수의 뜻과도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일종의 통쾌함 같은 것도 느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얼마나 예수의 뜻에 동참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특히 바리새이인들에 대한 설명에서 그랬다.
흔히 바리새이인을 위선적이고 못된 '공공의 적'의 대명사라고 생각하는데 당시 이스라엘 인민들에겐 존경을 받았던 계층이 바리새이인이라고 한다.
로마의 지배에 항거하는 것처럼 보이는 엘리트층이라 인민들은 그들을 따르고 그들의 삶에 존경을 표했지만, 바리새이인들은 근본적으로는 그 지배체제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더 나아가 원하지 않았던 것. 지배체제 하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문제점들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것은 멀리 보면 그 지배체제가 무너지는 원인을 사전에 제거해주기 때문에 그 체제를 더 공고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 원리를 통찰할 줄 알았던 예수는 그래서 유독 바리새이인들을 그토록 '갈구었다'는 것.
이 지배체제에 자본주의를 대입해보면, 말로는 자본주의의 해악을 설파해서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서 식견있다는 평을 듣지만 실은 자본주의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고 상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리새이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난 책의 이 지점에서 완전 찔렸다. 어머, 나 바리새이인이었던 거야? 이러면서 뜨끔뜨끔.
자본주의를 고도화시키는 데 상당히 일조하는 업계에서 일한다는 불편감(이전에도 살포시 느끼고 있던)이 또 다시 머리를 들이밀고 올라왔지만, 용기없음으로 주저주저하고 있다.


# 신재식, 김윤성, 장대익 <종교전쟁>

이 책도 읽을려고 사놓았던 건데 회사 다닐 때는 어마어마한 두께(600페이지 정도)에 엄두도 못내다가 이제야 읽었다. 사실 이번 휴가동안 했던 일 중 가장 보람찬 일 Best 3안에 들만한 사건. 내가 이렇게 두꺼운 책(소설도 아닌데!)을 결국 다 읽다니! 이렇게 감격할만큼 평소에 책을 끈기있게 못 읽는다는 얘기지만..어쨌든. ㅎㅎ
이건 뭐, 인상적이었던 것을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책이라서 뭐 어떻게 정리정돈도 할 수가 없다.
다만 이 책이 내게 준 선물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도 있다는 사실이 준 안도감 같은 게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창조론을 믿어야 하는 것 같은 풍토가 장악하고 있지만, 그건 내키지가 않았었다. 성경이 과학 논문도 아닌데 자꾸 거기서 무슨 증거를 찾으려 하고 뭐라도 하나 나타나면 "봐봐. 우리 말이 맞잖아"라며 고것만 파고드는 창조과학이 가진 태도가 싫었다.
그리고 반대로 실질적 증거가 없으면 그것 자체가 폐기되어야 한다고 믿는 과학주의도 내키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삶을, 그리고 정신까지도 한 차원의 이론으로 '일괄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유물론도 이상하게 느껴졌고. 정말 <이기적인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을 쓴 도킨슨의 말처럼 이기적인 유전자니, 밈이니 하는 것들이 전부일까? 그것들이 설명해주는 것이 분명 있겠지만, 그 이론들이 정말 섬세하고 촘촘한 삶과 생각의 결까지도 '온전히' 설명해낼 수 있나?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때 힌트가 된 예시가 있어서, 그리고 이건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옮겨 보자면

"두 분 선생님들께서 승용차가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합시다. "왜 저 차가 움직이고 있지?"하고 물어본다고 하죠. "자동차 바퀴가 구르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은 하나의 수준에서 좋은 대답입니다. "엔진에서 연료가 연소해서 피스톤과 구동축을 움직이기 때문이다."라는 대답 역시 다른 수준에서 동일하게 받아들일 만한 좋은 설명입니다. "철호가 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도 여전히 다른 수준에서 있을 수 있는 대답입니다. 또 다른 수준에서는 "철호가 학교에 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언급한 모든 설명은 그 각각의 수준에서 뜻이 잘 통하며, 어떤 설명 하나로 다른 설명을 대치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설명 하나하나는 서로 모순되거나 경쟁하지 않으면서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이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 설명인지는 맥락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 미리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설명들을 함께 고려할 때, 한 설명만 고려할 때보다 훨씬 더 풍부한 설명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설명의 다원주의는 유물론적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과학적 환원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됩니다."

내 설명은 하나의 수준에서 좋은 대답일 뿐이라는 한계를 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구절이다.


# 존 호트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앞에 발췌한 글은 <종교전쟁>의 공동저자인 호남신학대학교의 신재식 교수가 쓴 부분이었고, 그 글은 존 호트라는 신학자의 의견을 옮긴 부분이었다. 과학이 발전하면 그것에 맞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종교성이 드러날 것이고, 과학과 종교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지닌 신재식 교수의 글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읽게 된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존 호트의 책을 신재식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진화론을 기독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필요 전혀 없다, 신이 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기마음대로 하는 독재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건 신에게 투사해 왔는지도 모르는 전제군주의 이미지다, 오히려 기독교의 신은 자기를 낮추고 사랑의 대상이 오롯한 타자로 존재하길 원하는 신이다, 그렇기에 진화론은 오히려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는 고마운 존재다.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
이 책도 완전 재미있었다.
여러가지가 기억에 남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다윈주의와 유물론을 이퀄(=)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지적. 둘이 이퀄이라고 말하는 순간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이 신념으로서의 과학이 되고, 그건 과학 환원주의라는 이야기다. '발생학적 오류'에 대한 언급도 기억에 남는다. 발생학적 오류는 한 가지 현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면 그 현상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비논리적 오류인데, 책에서 사용한 맥락도 인상적이었지만 일상에서 흔히 빠지는 오류라서 기억해둬야겠다 싶었다.
어쨌든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은 긍정하지만, 그게 신념의 차원으로 넘어오는 순간 반대하는 게 존 호트와 신재식 교수의 입장인데, 아직 깊게 생각해본 것은 아니지만 나하고 잘 맞는(혹은 맞을 것 같은) 생각이다.

아참.
존 호트가 말한 '악'의 개념도 흥미롭고, 자극이 됐다.

"진화하는 우주에는 두 가지 형태의 악이 있다. 무질서라는 악이 있는데, 고통 전쟁 기근 죽음이 그 예이다. 그렇지만 또한 단조로움이라는 악도 있다. 단조로움이라는 악은 어떤 사물이 새로워지고 갱신되는 것이 적절할 때, 그것을 거절하면서 평범한 형태의 질서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움과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질서를 혼란시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새롭고 다른 것을 배제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삶의 둘레에 성벽을 쌓는다. 종교과 신학도 역시 질서의 고요에 너무 집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때때로 단조로움이라는 악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혼돈이라는 악을 무릅쓰고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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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결론은
거시적시각결핍자로 29년을 살다가
왜 갑자기 저런 거창한 생각들을 다루는 책에 꽂혔는지 나도 어안이 벙벙하다는 것.
앞서 말한 '자각이 닿지 않는 틈새'에서 어떤 움직임이나 작용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불가지론자인 생물학자가 쓴 <믿음의 엔진>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뭐, 어안은 벙벙하지만 재미있으니 됐다.
기록 끝. ㅎㅎ


2010/04/28 16:29 2010/04/28 16:29

궁금한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 영화, 음악을 읽고 보고 듣고 싶어진다.
그것들이 전해주는 '힌트'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겠구나, 하는.
그렇게 어깨너머로 상대방의 취향을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어느새 그 책, 영화,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 뭐랄까, 짜릿하다.
두 세계의 원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움직여서 작게 포개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릴 때 교집합, 여집합 등을 배울 때 보았던 산수 책 속 두 개의 원 그래프처럼.
그러나 그런 '우주적 이벤트'는 자주 벌어지지 않았다.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와 그 음악. 조선일보 시절 이동진 기자의 시네마 레터. 비틀즈. 우디 앨런. 에드워드 호퍼.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
물론 그렇게 어렵고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라서 '우주적 이벤트'인 것이지만.

2주 전에는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산도르 마라이라는 헝가리 작가의 책을 읽게 된 것도 사람 때문이었다.
서늘할 정도로 예리하고 아름다운 구절이 몇군데 있어서 앞에서 말한 그런 기적을 기대했지만, 결론적으론 일어날 듯 일어날 듯 일어나지 않았다.
산도르 마라이의 <결혼의 변화>라는 소설을,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할머니가 "펼쳐들자마자 첫 장부터 빨려들고 말았다"라고 평했다는데..그걸 읽어볼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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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불멸의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내 영혼 안에는 인도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 한번은 카페에서 술 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 나는 몇 시간씩 물을 응시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뒤좇을 수 있지만, 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나는 숲가에 서서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에 의혹의 눈으로 꼭 조건을 붙인다. 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임에 휩쓸려 내 인생의 저녁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사랑을 믿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인들과 함께 지낸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인 탓에 하늘을 믿고 땅을 믿는다. 아멘."

"구월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 이 깨지기 쉬운 형상, 세상을 유리로 감싼 듯 모든 것이 가슴 저리게 밝고 온아하다.
지금 구월의 유리 진열장 속에서, 세상이 진정 대가의 걸작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까칠한 잎새들이 제멋대로 늘어진 나무들은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외롭게 빈방을 지키는 술 취한 남자들 같고, 왠지 짜증스럽게 꽃이 만발한 정원은 상여 같다. - 유리"

"아직까지 생명의 탄생을 보지 못한 사람은 삶의 어떤 것, 특정한 것, 학교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것'을 알지 못한다. 생명의 탄생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역학에 대한 안목이 없으며, 생명을 창조하는 신비하고 무서운 공장을 알 수 없다. 생명이 탄생될 때 가동되는 힘, 삶과 죽음의 힘. 그 시간에 어머니와 아이는 맹목적인 본응으로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더듬거린다 -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 순간에 힘이 솟구치면서, 마치 지진처럼 어머니의 몸을 밀고 폭파시킨다. 피와 태반 대신 뜨거운 마그마와 화산재가 자궁에서 흘러나와도 보는 사람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공장을 보았다. 숙연, 아주 숙연해진다. 잠시 후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증인들이 슬며시 방 안을 떠나면, 미켈란젤로가 돌팔이고 뉴턴이 풋내기였다는 느낌이 든다. - 공장, 역학"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기계적으로 그냥 따라 말하지 말고, 이제는 굳게 믿어야 한다. 어느 날 운명이 너를 손으로 건드리리라. 네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른 시각에 다른 의도로. 삶이 너에게 손을 대면, 너의 일상은 불가사의한 일들로 가득 차리라. - 손길"

"자연이 감기에 걸린 듯 대기가 오한에 시달린다. 나무들이 콧물을 흘리고, 젖은 수건으로 감싸듯 안개가 밤의 초원을 덮고 있다. 국화가 예민한 아이들처럼 재채기를 하고, 보리수나무 꽃차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세상이 열과 오한에 시달린다. 아침저녁으로 일 그램의 아스피린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오한"

"'눈이 내린다' 이 두 낱말은 더없이 비밀스러운 기본적인 삶의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너는 행복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그만 놓치고 말았어"라고 이야기하거나 "조국,조국,조국"이라고 세 번 되풀이하여 말하는 듯 하다. 아니면 "기억이 나는가?"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감정에는 대답을 할 수도 없고 분석할 수도 없다. - 눈이 내린다"

"새벽 네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도시가 폭격을 맞았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든 것이 물속에 잠긴 듯, 저녁에 기이한 적막이 도시를 뒤덮었다. 폭격기들도 침묵했다.
저녁 무렵 도시에는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교외의 집 몇 채와 불가사의하게도 폭격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종탑만이 온전했다. 시내 중심가의 유서 깊은 아름다운 옛집들과 대성당은 파괴되었는데, 종탑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종지기는 저녁마다 그랬듯이 138개의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 청동으로 주조한 종을 쳤다. 종소리가 시내 곳곳에 울려 퍼졌다.
종지기는 자신이 맡은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런 행동이 전혀 의미가 없다. 상징도 아니다. 도시가 멸망하면 상징들도 그 의미를 잃는 법이다. 그러나 종소리는 울려 퍼졌고, 폐허 위를 맴돌았다. 부상당한 자와 죽음을 앞둔 자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평상시에 모든 것이 공허하고 무상했으며, 도시의 유일한 의미는 벽이 무너져도 침묵하지 않는 그 소리였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물론 종지기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종지기에게는 월말에 돈을 받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걱정을 하며 이를 악물고 종을 친 것이다. 그러나 새카맣게 그을린 돌 틈 사이에서 종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진 탓에, 도시는 폐허 속에서도 살아있었다.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자, 종을 울리자. - 도시"

"언젠가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엄한 판사가 물을 것이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고통과 실망, 절망 뿐이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오. 당신은 행복한 적도 있었소. 자주는 아니지만 분명 행복한 순간이 있었소. 그 순간을 말해보시오."
뭐라 답변할 것인가? 나는 고개를 떨구고 귀 뒤를 긁으며 당황하여 앞을 응시할 것이다. 그리고 내 대답.
     "맞습니다. 저도 행복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행복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맛이 아직도 혀에 생생하고, 그 향기가 코끝에 스치고, 그 긴장이 신경을 타고 흐릅니다. 그런데 그게 언제였지요? 어린 시절? ......아닙니다. 그다지 즐거운 어린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청소년기 아니면 나이 들어서? 음울한 기억들이 더 강하게 모든 것을 뒤덮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과연 언제 행복했지요? ......이제 알았습니다. 기억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한 순간이었습니다. - 행복"

"네가 사귀었거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과 인생을 추리 소설에서처럼 묘사하라. 그러면 별안간 모두들 수상쩍은 용의자가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조급하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려들고, 의심스러운 물건이 사방에 널려 있으며, 하찮은 것들이 은밀한 의심의 빛을 받아 특이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용의자들"

"문학은 솔직하지 못하게 시건방을 떨며 돈을 경멸한다. 돈이란 막이 오르기 전에 무대 감독이 주인공에게 건네주는 연극의 소도구이고, 무대에서만 사용되며 성대한 공연에서 시시한 역할만을 하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 적어도 사랑이나 죽음에의 공포, 야망이나 조국애만큼 삶을 채우는 돈은 실제로 훨씬 더 미묘한 체험을 가져다준다. 돈과 관련된 일상적인 체험, 즉 이십 펭고의 특별 지출이나 오십 펭고의 특별 수입이 우리 삶에서 빚어내는 극적인 긴장감을 ,사랑이나 야심보다 한층 더 복잡 미묘한 이 감정의 응축을 묘사한 글은 아직까지 없었다. 돈이란 원래 그런 감정의 응축이며, 살다보면 사소하고 평범한 돈에서도 그런 감정의 응축을 자주 볼 수 있다. 팔 펭고 오십의 충격, 이십육 펭고의 행복, 십칠 펭고의 절망을 묘사한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문학은 대부분 극단적인 것, 존재하지 않거나 터무니없이 많은 돈에 대해서만 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터무니없는 많은 것 사이에서 살고 계산하고 느끼고 열광하고 눈물을 흘린다. - 돈"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수그러들거나 사라질 줄 모르고 말로 형용할 수도 없는 이 흥분.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나를 덮쳐서 시험하는 이 중압감과 불안 - 아침이고 저녁이고 글을 쓰기 전의 망설임, 거듭되는 준비와 마음의 각오, 게으름, 담배, 독서, 그리고 혹시 마지막 순간에라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남모르는 은밀한 기대, 게다가 실제로 방해하는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아무리 훈련을 하고 경험을 쌓아도 나아지지 않는 가슴 두근거림! 그러다가 정말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말이 무르익어서 신호가 되고 확정된 표현이 되려 한다. - 시작하기 전에"

"칠월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넘치게 무르익었다. 냉장고 안에서 우유가 응고하고 살구가 상하고 고기가 부패했다. 감정들이 시큼하게 변질되고 사회 구조가 조각나 떨어져나가고 국제 협정이 해체되었다. 보리수나무에 새싹이 돋는가 하면 장미가 시들었다. 사방 천지에서 파멸, 악운이 시큼하게 발효하며 부풀어올랐다. 들판에 널려 있는 시체들은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응시했다. 플랑드르에서는 어느 외로운 농부가 밀짚모자를 쓰고 폭격 맞아 부서진 탱크 사이에서 밀을 베었다. 사랑은 단 하룻밤 불타오르고 시들었다. 칠월, 파멸의 달이었다고 기억한다. -파멸"


2010/04/22 12:33 2010/04/22 12:33

나는 검색할 때 네이버를 쓴다. 구글은 아주 가끔, 해외 사이트에서 정보를 모을 때만 쓴다. 외국 배우에 대한 썰을 풀어야 하는데 한국어 자료가 너무 없다던지 할 때. 요는 나는 구글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2010년 4월호 기획회의를 준비하느라 서점을 뒤질 때 <구글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을 발견하고 바로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4월호 피처팀의 메가 이슈로 다뤄보고 싶다고 아이템도 냈는데, 그 이유는 올드미디어 종사자로서 갖고 있던 불안감 때문이었다. 구글이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그런 면에서 이 책을 고른 건 적절한 선택이었다. 구글이라는 도구로 시대의 변화를 짚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구글이 미국 방송3사의 수익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정도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뉴미디어 시대의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띔을 해준다는 의미다. '의미있는 컨텐츠'에서 그 '의미'라는 것의 정의를 수정할 필요가 있단 생각이 매우 많이 든다. 그것도 하루 빨리 해야한다고 느껴진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잡지쟁이로서 내가 하루하루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되짚어 보면 한숨이 나온다.
<쎄씨>라는 잡지의 피처기사에 대해선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20대의 목소리를 가장 빨리, 그리고 자유롭게 담을 수 있는 잡지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쎄씨>엔 취업 기사가 그리 많지 않았다. 2010년 <쎄씨>피처에선 취업 기사를 거의 매달 특집에 가깝게 내보낸다. 왜냐, 지금 20대들의 삶 전체를 들었다놨다 하는 이슈니까. 일반인이 대거 등장해야 하고 취재한 데이터들을 기억에 남도록 에디팅도 해서 담아야 하는 이런 취업 기사는 비주얼로만 놓고 봤을 땐 책을 후져보이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쎄씨가 취업기사들을 써댈 때, 비주얼과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다른 라이센스 매거진에선 본격적으로 취업기사를 쓰지 않았다. 라이센스 매거진은 본사로부터 하달받는 제작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 절대 다루어서는 안되는 주제가 정해져 있고, 인터뷰 질문의 톤과 깊이까지 모두 정해져있다. 내가 로컬 매거진의 방식에 익숙해져서 그런건지, 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게 좋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잡지를 사서 보는 20대에게 취업이 절대 화두라면 우중충하고 패션지와 참으로 안어울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쓰고 싶고, 써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끼어들 수 있는 또 한가지 질문은 사람들이 패션지를 왜 보느냐는 것이다. 취업 기사 읽을려고 패션지를 살까? 그런 독자 아이들도 종종 있어서 나도 놀랍지만, 어쨌든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패션과 뷰티 신제품과 트렌드가 궁금해 패션지를 구입한다. 그리고 비주얼 경험. 머리를 환기시키는 비주얼 경험을 하려고. 그리고 에디터의 글에 녹아있는 시각을 맛보려고.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브랜드 카탈로그를 구경할 수 있고, 트렌드을 읊어주는 글들도 넘쳐나고, 아름다운 디자인 워크를 뽐내며 비주얼 경험을 하게 하는 웹 사이트도 많은데 왜 굳이 패션지에 비용을 지불할까?
정보가 넘쳐날수록 그걸 엮어주는 존재가 절실해진다. 많이 알면 알수록 선택은 더 어려워지니까. 그 수많은 정보들을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누군가가 알려주었으면 바라게 된다. 그 SOS신호를 포착해서 가이드가 되어주는 게 내 생각엔 잡지의 존재 이유다. 패션지도 잡지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건 커버모델은 항상 어떤 포즈여야 한다, 시선은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 인터뷰에선 삶의 골치아픈 부분까지 캐묻지 말아야 한다 등등 매체별 성격을 규정하는 가이드라인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제작 가이드라인 없이 16년동안 만들어온 쎄씨가 16년째 엄청 잘 팔리는 걸 보면 그런 것 같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인지라..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담지 않고, 그닥 신선한 비주얼 경험도 시켜주지 않고, 취재를 헐렁하게 하는데도 시장에선 잘 팔리는 잡지의 비밀에 대해선 뭐라 할 말이 없다. 나도 그 비밀이 궁금하다.
여기서 살짝쿵 생각이 들었던 건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보자면 <보그>는 엄밀히 보자면 잡지업계에 속해있다기 보다는 패션업계에 속해있는 게 아닐까 하는 짧은 생각. 패션 판타지의 확장이 그 잡지의 존재이유니까.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쓸데없는 게 궁금해졌다. 다른 잡지에 있는 에디터들은 자신이 잡지업계 종사자라고 생각할까, 패션업계 종사자라고 생각할까. 이건 내가 피처 에디터라 갖는 생각인가 싶기도 하고. 뭐. 어쨌든.

더 예민하게 고민할 게 수두룩한데
중앙m&b라는 회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잡지사가 '좋은 잡지란?'에서 '좋은'의 의미가 뭔지 고민해야 하는데
애먼 데 에너지를 쓰고 있다. 당장 수익을 내고 결과물로 돌아오는 것들이 있긴 하겠지만, 그게 올드미디어의 사망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도 힘을 발휘할까? 미디어는 사망해도, 좋고 의미있는 컨텐츠는 사망하지 않으니, 지금 통용되는 '좋고 의미있다'는 게 뭔지부터 고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오늘 오후
그룹 차원에서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모 프로젝트 회의에서
편집팀이 아닌 경영팀의 발표를 들으며 생각했던 게 많아
나야말로 애먼 데다 성토 대회를 열었다. 제목은 저렇게 써놓고 결국 <구글드...> 이야긴 제대로 하지도 않았잖아.ㅎ
발췌 정리는 추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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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에 시작한 발췌정리.


"기존 미디어 업체들은 '이노베이터의 딜레마'에 빠졌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동명의 저서에서 사용한 이 개념은, 경영 상태가 좋은 회사들이 신기술이나 신규 비즈니스 모델에 맞닥뜨리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맹렬히 고수하면서 발 빠른 변화를 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테리 위노그래드)는 학생들에게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심리>같은 책을 읽게 했다. 이 책의 요지는 비디오, 컴퓨터, 도저히 열 수 없는 플라스틱 포장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십중팔구 소비자의 관점에서 제품을 디자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물건을 만든다. 노먼은 이렇게 꼬집는다. "이것은 기술의 패러독스다. 기능이 많아지면 그 대가로 복잡성도 증가하게 되고 마니.""

"MS의 방식은 이것이다. '당신들은 내 방식에 따라야 한다.' 반대는 이것이다. '아니, 난 만들기만 할 테니까 당신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아. 난 그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도와줄 거야.' 이것이 유닉스 철학이다."

"그들은 AOL과 야후와 MSN이 받아들인 틀에 박힌 생각, 즉 포털을 만들어 온갖 컨텐트로 꾸며진 인공정원을 만듦으로써 사용자를 그 안에 가둬둬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그들은 사용자가 되도록 빠르게 구글에서 벗어나 검색 목적지로 가도록 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곳에 모인 엔지니어들은 성문화한 규정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규정이 있다는 것 자체로 '탐욕스러운 기업'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그들이 생각하는 능률의 개념에도 위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 동안의 짜증스러운 토론 끝에, 폴 부하이트가 툭 내뱉었다. "다 치워버리고 그냥, '사악하게 굴지 마.' 이 한마디가 어떨까요?" ..... 이 문구는 구글의 기호가 되어 다른 기업, 특히 MS와 구글을 구별해주고 구글이 전 세계의 정보를 만인의 손끝에 무료로 전달해줌으로써 받은 호감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다."

""권한을 위임받은 엔지니어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빌 캠벨)가 말을 이었다. "혁신을 촉진하려면 엔지니어들이 상품-마케팅 파트에 주눅 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 목표는 성장이고, 성장은 혁신에서 나온다. 혁신은 뛰어난 상품-마케팅 파트가 아니라 뛰어난 엔지니어들에게서 나온다." "

"G메일 논쟁을 보니 구글이 과학과 데이터와 수학 알고리즘에 너무 의존하여 응당 일어날 만한 사생활 침해에 대한 두려움을 간과하는 듯했다. 그리고 언젠가 구글이 검색시장을 완전히 지배할지 모른다는 대중의 공포를 너무 가벼이 여기는 듯했다. ...... "... 그런데 그런 태도는 일봉의 오만입니다. 우리가 더 잘안다는 거죠. 소비자에게 더 좋은 게 뭔지 소비자보다 더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이 구글에서는 허용되는 겁니다." "

"위노그래드가 말했다. "그 친구들은 제도나 정치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개인적이고 엔지니어다운 관점에서 봅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요!' 자신의 진심을 믿는 거죠" 물론 위노그래드도 그들을 믿는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열정이 한편으로는 '우리는 똑똑하니까 우연이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낳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술적인 오만, 그러니까 '시스템은 절대 실수할 리 없다'는 오만을 낳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실수할 수 있다.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오류를 저지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구글 동맹들과 대가를 받고 싶어 하는 출판사(저자)의 이해관계는 '재산권'의 정의로 귀결된다. 인터넷에서는 컨텐트 생산자의 정보를 공유하는 대신, 몇 페이지에 걸쳐 내용을 복제하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미디어에서는 그런 '공유'가 통상 절도로 간주된다. 작가조합 역시 구글에 소송을 제기했다."

"출발하는 날부터 구글은 인터넷 전체를 복제했습니다.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처음으로 한 일이 존재하는 영화를 모조리 복제하는 것인 회사가 상상이 가십니까? 웹은 언제나 복제와 연관되지만, 저작권법은 복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률입니다."

"양쪽 다 '저작권 도용'에 관해 말했지만, 기존 미디어는 방지할 수 있다는 쪽이었고 뉴 미디어는 노력은 해보겠지만 완전히 방지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쪽이었다. 양쪽 다 컨텐트에 관해 말했지만, 둘이 의미하는 바가 달랐다. 기존 미디어에게 컨텐트란 전문적으로 제작된, 무삭제 TV프로그램이나 영화였다. 유튜브에게 컨텐트란 짧은, 대체로 사용자가 생성한 것이었다. 이런 논쟁은 여러 면에서 무의미했다. UGC든 전문적으로 제작된 컨텐트든, 모두 사용자의 주의를 끌기 때문이다. "컨텐트란 사람들이 시간을 쓰는 대상을 말하죠. 컨텐트는 코미디 채널에서 방영되는 내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페이스북도 컨텐트가 됩니다. 그건 소비자가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기로 하느냐의 문제지요." "

"이제는 소비자가 통제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계속 잘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들은 미디어 전문갑니다. 온라인에서 잘하지 못하리란 법이 없어요. 온라인은 새로운 미디어라고요. 미디어에 관한 거라면 당신들이 저 실리콘밸리의 괴짜들보다 낫지 않나요? 지금 그놈들이 당신들 엉덩이를 걷어차고 있단 말입니다!""

""미디어가 모두 디지털로 옮겨가게 된다면, 결국 미디어 유형 간의 구별은 덜 중요해지거나 아예 무관해질 겁니다. 만약 내가 신문을 전자기기로 읽다가 슈퍼볼 경기의 터치다운 사진을 보고 클릭했더니 60초짜리 동영상이 나와서 그걸 보게 되었다면, 나는 지금 신문을 읽는 건가요, TV를 보는 건가요?" 소비자가 뒤로 기대든 앞으로 기대든 어떤 기기를 사용하든 두 가지가 혼합된 것을 사용하든, 미디어는 접근이 용이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고..."

"구글과 야후는 항상 광과 판매를 위한 플랫폼에 열중합니다. (구글의 새로운 프로그램은) 모두 결국 어떤 미디어에서든 광고를 판매할 수 있도록 제작될 겁니다."

""중국을 달래려고 특정 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다면, 강력한 광고주들을 달래려고 특정 사이트를 차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개인정보 문제가 권력 문제와 뒤엉킨다. 구글과 더블클릭 둘이 합하면 막대한 소비자 데이터를 산더미처럼 수집한다."

""양방향 광고의 기본 모델은 매일 사용자의 새로운 관심사를 알아내도록 고안된 강력한 데이터 수집 비즈니스와, 그 데이터를 활용해서 사용자를 특정 방식으로 유도하는, 즉 어떤 상품을 사거나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멀티미디어를 창조하는 비즈니스를 결합하는 거죠""

"로턴버그는 핵심 질문이 '구글이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입하는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믿는다. 오히려 이렇게 바로잡아야 한다. '구글이 대체 왜 그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가?'"

""내가 암에 관해 책을 잔뜩 읽는다고 치죠. 그 정보가 내가 가입한 보험 회사로 새어 들어가서 보험료를 5% 인상시킨다면 그건 안 될 일입니다." 그(팀 버너스)는 그 정보들은 폼, 혹은 그 어떤 전화 회사나 케이블 회사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건 내 겁니다. 다른 누구도 가져가선 안 됩니다. 그걸 어떤 용도로건 쓰고 싶다면, 나와 협상해야 합니다. 내가 동의해야 하고요."

""이건 완전히 다른 광고방식이에요. 당신이 도쿄에 있다고 하죠. 정오에요. 인구밀도가 무시무시하죠. 점심시간이 45분밖에 없어서 건물에서 달려 나갔는데 이미 음식점 자리가 부족해요. 그래서 전화기를 꺼내서 찾아보니 10분 내에 자리가 나오는 음식점이 여섯 군데가 떠요. 가고 싶은 음식점을 클릭해서 세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자리가 예약되죠. 이것이 광고일까요? 당신이나 내가 생각하는 30초짜리 광고는 아니죠. 하지만 그 음식점이 거기에 비용을 낸다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아니면 사용자 고지서에 포함돼 있거나."

""이렇게 온라인에 뉴스가 집결되는 이면에는 저널리스트를 고용했을 때 거두는 투자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그 말은 구글이 만들어놓은 이런 환경에서 미디어로 돈을 벌려면 OPC, 즉 타인의 컨텐트(Other People's Content)에 의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도 두 가지 의문에 답해주지는 못했다. '이런 노력이 돈을 벌게 해줄 것인가?' 그리고 '이런 스토리텔링이 웹에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아이스너는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토리를 전시할 플랫폼이 아무리 많아져도, 결국 사람들이 어떤 스토리를 듣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그는 앞으로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간식을 먹듯 조금씩 섭취하는"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미디어 회사들이 취할 전략은 메테르니히 시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힘이 강하다고 생각하는지 반대로 약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나중에 슈미트는 배런이 말한 '경쟁자'가 야후나 MS, 디스플레이 광고 분야를 뜻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이들은 광고라는 퍼즐에 '세계적 수준의 창의성'을 제시하는 회사들이 아니다. 배런이 의미한 '경쟁자'란 결국 WPP나 그룹M,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일 것이다. 광고업계의 선수들 말이다."

"때로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기회와 같이 찾아왔다. 영화 스튜디오는 TV 떄문에 한동안 분통을 터뜨리다, 나중엔 영화 판매에 유리한 무대임을 발견했다."

"미디어 회사는 언제 영화가 상영되며 DVD가 발매되고 음반이 출시되는지, 쇼가 언제 TV에서 방영되는지, 언제 책이 출간되는지 발표했다. "통제가 관건이었어요. 비판이 아닙니다. 그게 그때의 사업이었으니까요. 뉴 미디어에서는 시청자를 컨텐트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컨텐트를 사용자가 있는 곳으로 퍼다 나르죠. 그리고 사용자들이 곳곳에 있어요.""

"한 저명한 미디어 중역이 내게 속삭이며 질문을 건넸다. 그는 구글이 자신을 위해 막대한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것이었다. '구글이 사회를 위해 생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기존 미디어의 주머니에서 자기 주머니로 돈을 옮긴 것을 제외하면 무엇에 공헌했는가?"

"그들은 브랜드가 신뢰의 동의어이며, 예산 따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소비자들은 대부분 <뉴욕타임스>에 실린 정보나, 애플의 '다르게 생각하기'나, 코카콜라의 맛이나, 볼보의 안전성이나, 월마트나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저렴한 가격을 신뢰한다. <와이어드>창립자 중 한 사람인 케빈 켈리가 블로그에 썼듯이 우리가 '인터넷을 무료정보 복사기'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 무료 복사본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켈리의 답은 이렇다. "복사본이 무료라면, 복사할 수 없는 것을 팔아야 한다." 그중 첫째는 '신뢰'다. 신뢰는 복제가 안 된다. "신용은 반드시 시간이 지나야만 쌓이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마치 사회복지단체처럼 말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 사회이상주의는 인터넷 문화의 핵심가치였고, 그 형태는 웹이 개방되어야 한다고 믿는 오픈소스 운동이나, '군중의 지혜'를 신뢰하는 비영리모델인 위키피디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미디어와 엔지니어는 서로 다른 행성에 산다."

"하지만 인터넷 때문에 종이신문의 독자가 줄어들어 광고와 판매 수입이 적어지며, 1등 신문의 정보와 2,3차 가공정보들이 동일하게 취급받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뉴스는 이 외에도 또 다른 부작용이 있다. 어떤 기사가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는지 신문사 사주들이 측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래리 페이지도 한탄했듯 방문자를 늘려주는 기사들은 대개 '브리트니 스피어스 무너지다' 혹은 '제시카 심슨 몸무게 늘다' 등 기자들이 쓰고 싶은 글이 아니다.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런 저급화 현상은 점점 악화된다."

"내가 말하는 '신문'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인쇄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뉴스를, 그들이 원하거나 필요하다고 기대조차 못한 뉴스까지 제공하는 '상품'을 뜻한다. 어쩌면 그것은 도서 리뷰일 수도 있고, 요리법일 수도 있고, 공직자들이 연금을 과도하게 받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파산 직전의 은행들이 중역에게 보너스를 지급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온라인이든, 인쇄본이든, 훌륭한 신문이라면 슈퍼마켓처럼 다양한 상품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훌륭한 저널리즘은 보통은 팀워크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 '편집자 없이도 기계가 뉴스를 수집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저널리즘 집단을 생각 없이 묵살해버리면 민주주의에 필요한 고뇌하는 저널리즘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순진하게도 대다수의 수수께기를, 그것이 복잡미묘한 인간행동에 관한 수수께끼라도, 데이터만 있으면 풀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월스트리트는 그런 수학적 파생상품 모형을 믿다가 미국 경제에 크나큰 타격을 입혔다."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세상에서, 과연 인간은 더 현명해지게 될까 아니면 반대로 더 단순해지고 멍해질까. 몇 세기 전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가 과연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혹시 편리함이라는 새를 잡으려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만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한 듯하다. 변화의 물결을 보지 못하면 그런 의문을 곱씹을 여유조차 누리기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점."



2010/02/24 01:59 2010/02/24 01:59
  1. thedream 2010/02/25 17: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ㅋㅋㅋㅋ 많이 듣던 얘기구만.
    근데 이렇게 open된 공간에 회사 얘기를 써도 되나?

    •  address  modify / delete 2010/02/25 23:48 radioheadian

      글쎄요. 저라면 직원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단 것이 오히려 반가울 것 같은데요. 그리고 우리 회사, 직원들 생각이나 사생활까지 통제하려고 하는 회사는 아니라서요.ㅎㅎ

이석원 <보통의 존재>

from Library 2010/02/14 23:58
읽은지 꽤 되었는데 이제야 밑줄 친 부분을 옮길 시간이 생겼다.
난 이석원의 음악만 들었지, 그의 인터뷰나 그가 쓴 글을 읽어본 적은 없어서
어떤 사람일지 추측해 볼 힌트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음악을 봐서는 엄청나게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복잡하겠구나 싶긴 했지만.
그런데
이렇게 재밌고 귀여운(물론 그의 외모를 보면서도 귀엽단 말을 선뜻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얼굴을 안보고 책만 봐서는 귀엽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면을 가진 아저씨인지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 낄낄거리다 배 잡고 웃고, 텅 빈 집에 울리는 내 웃음소리가 어색하고 민망해서 씁쓸하게 웃음을 거두는 짓을 몇번이나 했다.

이혼을 계기로 자신이 '보통의 존재'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글을 쓴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엔 결혼과 사랑에 대해 회의하고, 질문을 던지는 구절들이 많다.
한때는 자신의 전부를 뒤흔들던 감정이 왜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사랑은 왜 변할까, 이런 식의 질문.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할 때
물론 '오죽하면 저걸 물어볼까' 생각한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 장면에서 느낀 건
'쯧쯧. 가서 엄마 젖 더 먹고 와' 였다.
사랑은 당연히 변하는 거야, 니가 세상을 덜 겪어봐서 그런 어리광을 피우는 거야. 뭐 그런 느낌?
내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게 아니라, 그 장면의 연출 의도가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의 난 (그때가 스무살이었으니까) 당연히 진정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유지태의 심정에 몰입이 되었었고.

어쨌든
이제 곧 서른이 되는데
유지태식의 '동화'에도, 이석원식의 '보도'에도 모두 동의가 되지 않는다.

뭐,
과도기는 재미있는 거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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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서로를 봐도 가슴이 뛰지 않고
키스는 짜릿하지 않을 때,
잡은 손은 무디어 별 느낌이 없을 때
그것이 왜 절망이 되지 않는지,
어떻게 그럼에도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고 싶다.
그럴 때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은 무엇인지."

"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은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전에 사람한테 주지 못한 걸 이번 사람한테 주고 전에 사람한테 당한 걸 이번 사람한테 푸는 이상한 게임이다. 불공정하고 이치에 안 맞긴 하지만 이 특이한 이어달리기의 경향이 대체로 그렇다."

"희망이 생기리라는 희망.
소통이 가능하리라는 믿음.
가족이라는 제도가 지속되리라는 기대...
어렸을 때부터 믿어왔던 가치들이 이렇듯 차례차례 허물어져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저는 사랑과 생명에 끝이 있다는 것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하구요.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나의 삶은 38년간 무기력함에 시달리다가 마흔을 앞두었다는 시기적 절박감과 마침 무너졌던 건강 덕분에 생의 유한함을 절실히 목도한 후 비로소 삶에 생명력과 애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생토록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가 그제서야 하고 싶은 게 생겨나더군요."

"갈망의 마음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면서도 다른 존재의 간절함에는 무심했던 것이다. 간절함이란 이처럼 모순된 것일까. 눈앞에서 죽음으로 호소하고 있는데도 이토록 외면할 수 있다니. 아마도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는 무엇도 내게 이렇게 무심하리라. 나의 간절함은 결코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리라."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 뿐."

"내가 그토록 달아나고 싶고, 회의하던 것들로부터 나와 내 삶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인 순간, 나의 모든 아쉬움들은 그제야 비로소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잘나지 않은 내 가족과 친구들, 무엇보다 늘 부끄럽게 여기던 내 자신까지, 바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내게 건넨 힘과 그들과 함께했던 세월 덕택이었습니다."

"그다음 버섯. 아주 음흉한 놈이다. 어렸을 땐 버섯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기도 아닌 것이 잡채 속에 들어가 늘 고기 행세를 하며 사람을 기만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버섯의 진가를 알게 되고 난 후 이제는 고기가 주는 건더기의 쾌감을 만족시켜주면서도 정신적인 안정감까지 주는(건강에 좋으므로) 멋진 친구가 되었다."

"아들을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로 길러내려 억압하고 채근하던 엄마는 이제 행여 자식 일에 지장을 줄까봐 늘 노심초사하는 늙은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분명 나의 생에 무언가 엄청난 결핍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구멍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아니 채우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새벽 두시에 일어나서 소리를 내며 집안일을 하는 엄마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 ... 그런 일상의 불가항력 속에서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점점 휘발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슬프다."

"돌이켜보면 씁쓸한 것은 사람이 결혼하자고, 우리 같이 살자고 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제발 헤어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고 싶다고 눈이 멀어서 맹렬히 달려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어 더 무서운 속도로 돌아오는 것. 그게 사람의 이기심이란 것일까."

"사랑을 약물의 힘으로 지속시킨다는 것의 순수성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사랑을 호르몬 놀음으로 만들어버린 의학자나 조물주에게 먼저 따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것은 남들보다 세상을 더 조심스럽게, 실수 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과 내가 거북이라면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등딱지를 남들 것보다 좀 더 강하고 정밀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만큼 속의 알맹이가 약했기 때문이리라."

"어디든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고 누구든 병들거나 죽지 않으며 사랑은 결코 시들어 소멸하지 않아 이별 따위 없는, 모함과 오해와 갈등 같은 것 없는 진짜 천국."

"세상은 자기만 알고 있어도 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굳이 공개적으로 쓸 때엔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생각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너그러움과 호기심을 갖고 대해준다."





2010/02/14 23:58 2010/02/14 23:58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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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중 새벽 2시 25분.
백석과 자야의 러브스토리를 기사로 옮기다
별안간 백석의 시에 꽂혀서 뒤적뒤적.
쓸쓸하고 서럽고 고단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시다.

그러고 보니
내 방에 놓인,  불 끄는 게 무서운 날 켜놓고 자는 등에 쓰인 글귀가 백석의 시였다.
불경처럼 서러워지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은 새벽이다.


2009/11/12 02:31 2009/11/12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