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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대전 부모님댁에 내려왔다가 경이로운 것을 발견했다.
2010년 8월 5일부터 시작된 아빠의 새로운 취미.
아니, 취미라기보다는 아빠의 시간, 일분일초를 조각해놓은 핸드 크래프트 작품.
요즘 우리 아빠는 성경책의 모든 구절을 손으로 적어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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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20대 시절 원불교도였고 청년회장까지 맡으셨던 이력이 있다.
직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잠깐 활동한 것이었지만 하는 동안엔 꽤 열심이었고, 리더십도 있었노라고 하셨다.
원불교도일 때도 세상을 더 알려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끝까지 2번 통독을 하셨다고 했다.
그 이야길 내가 중학생 때 즈음 해주셨는데
당시 깨작깨작 교회에 다니던 나는
믿음 때문도 아니고
호기심 하나만으로 다른 종교의 교리를, 나는 지루해 죽을 것 같은 그 두꺼운 책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뻥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빠는 하기로 했으면 어기지 않고 계속 해내는 류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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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 때
아빠는 신문의 사설, 칼럼, 하루한자 섹션을 스크랩해서 2장씩 복사한 다음 일정 분량이 모이면 책으로 묶어서 나 한권, 언니 한권 선물해주셨다. (그때 우리에겐 그게 선물이 아니라 부담이어서 받아만 놓고 공부하진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3년 정도 그 일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것 뿐만 아니라
신문의 건강 기사만 모아서 <건강하게 삽시다>라는 이름을 단 스크랩 단행본을 셀프 제작하시고
어느 수지침 전문가의 연재기사에 꽂히신 다음엔
신문 스크랩을 너머 독학으로 수지침의 세계를 섭렵해버리셨다.
신문을 보고 버리는 게 아니라
생선 살을 발라내듯 필요한 콘텐트만 발라내 묶고 엮었다.
그 흔적의 일부가 아빠 방 책꽂이에 이렇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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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빠에게 '에디터 본능'이 있었다'
오늘, 이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왔다.
읽을거리에 대한 원인모를 수집욕구, 본능같은 끌림, 자기만의 숙성법이 아빠에게도 있는지 몰랐다.
매일 신문을 오리고 붙이고 엮는 아빠를 보고 자랐으면서 몰랐다.
이 뒤늦은 깨달음이 가슴을 쿡쿡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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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손으로 옮기기>라는 아빠의 새로운 취미 흔적을 발견하고 난 뒤, 이래저래 오가는 감정들이 많다.
코끝에 안경을 걸치고 침침한 눈으로 문장 하나하나를 써내려가고 있는 풍경이 어른어른 눈 앞에 그려진다.
무엇이 아빠로 하여금 저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걸까 생각하면
마음이 일렁일렁한다.
'아빠가 글에 대한 에너지와 집념을 발산할 더 좋은 환경을 만났었다면..'
'채워지지 않는 허기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애잔한 마음은 곧 존경으로 바뀌었다.
일상의 권태를 이기는 독특하고 의미있는 시도, 무뎌지고도 남을 나이인데도 아빠만의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 '해보자' 했던 것을 '해냈다'로 만드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마음과 엄격함.
...65세가 되었을 때, 나도 저런 몰입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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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보다 한 3천5백배쯤 위대한 사람인 것 같다.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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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 modify / delete 2012/02/01 16:18 radioheadian
그러니깐요. 아빠의 끈기 DNA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산만한 아이가 나왔는지 저도 의아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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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정작 자신은 잊어버린 사소한 족적 하나하나까지 기록되어 보관된다는 점이 찜찜해서 가입을 미루고 미루다가 직접 써봐야 정체를 알겠단 생각에 시작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거슬러 올라가면 옛날 옛적 싸이월드까지, SNS 채널들은 자신의 일상 속 순간, 잠깐의 장면, 그 때의 생각, 감정 한 톨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도록 만든다.
내 마음대로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향해 싸지를 수 있는 채널이라서 '자기 표현'이 즐거운 놀이가 되게 만든달까.
한가지 재밌는 건
이전까지는 의례 흘려보내던 사소한 순간까지도
눈에 보이는 것(사진, 트윗, 어느 장소에 방문했다는 팩트...)으로 물성화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내가 소유했다는 기쁨(혹은 착각)을 준다.
SNS 시절 이전까지 내 인생의 타임라인은 어렴풋하게 나만 알고 있었지만, 지금 내 인생의 타임라인은 나보다 페북이나 트위터가 더 잘 알기 때문에 지나간 글이나 트윗을 뒤져봐야 한다.
... 지금 나는 까먹어버린 스물한살 무렵의 고민이, 3년 넘게 로그인 한번 하지 않는 싸이월드 일기장 어디엔가 적혀있다는 게 다행인 걸까, 불편인 걸까.
게다가 그 와중에
'팔리는 내용' '안 팔리는 내용' 가격(댓글, 좋아요, 퍼가기, 리트윗)까지 실시간으로 매겨지니
SNS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넋놓고 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주식거래소 풍경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 '자기 PR'이라는 단어가 더 듣기 싫어졌다.
일상을 공유하라는 건지, 상품화하라는 건지 모호하게 퉁치는 태도나 발언을 만날 때면
내가 어떤 노선을 취해야 할지 헷갈린다.
요 게임들 말고는 그동안 내 혈관 속에 흘러다니는 '집요함의 인자'를 자극하는 게임이 없었다.
다마고치니 심시티니 프린세스메이커니 스타크래프트니 리니지니 하는 수많은 게임이 있었지만 크게 관심도 없었고 해보고 싶단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난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지난 주말에 부서 공용 아이패드에 후배가 깔아놓은 뿌까 레스토랑을 켜보고 나서 주말동안 틈틈이 어떨 때는 3-4시간동안 완벽집중해서 전병을 굽고, 스프링롤을 만들고, 테이블과 의자를 구입하고 서빙하는 다다까지 고용해서 레스토랑을 넓혔다.
일요일 밤 조리시간 12시간짜리 포춘쿠키를 솥단지 위에 올려놓고
월요일 오전, 이제나저제나 완성될까 하고 있었는데
무슨 몰래카메라처럼, 애초 어플을 깔았던 후배가 홀랑 지워버리는 허망한 일을 경험했다.
'아, 너무 집착할 것 같았는데 이참에 손 털자' 하고 잠시 잊고 지냈는데, 조금 전 내 아이폰에 어플을 다운받아 다시 제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새 부서에서 풀어내야 할 숙제의 무지막지한 규모와 막막함의 무게에 괴로워하다가 '아, 몰라몰라. 다 잊을래' 하고 뿌까를 켠 것이다.
근데 왜 하필 이 게임이 하고 싶었던 걸까? 이 게임의 어떤 면이 재미있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잠시 생각해보다 곧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성실함으로 인정받기.
사람들이 이 게임을 하는 목적이다.
대단한 스킬이나 조정능력보다 그저 시간과 꾸준함만 있으면 레벨을 올릴 수 있다.
물론 레스토랑을 꾸미고 직원을 고용하는 등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게 해놓긴 했지만 일순간 돈으로 모든 것을 사서 한큐에 끝내버리면 이 게임을 하는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10초에 한번, 길게는 12시간에 한번씩 요리가 잘 되어가는지 들여다보고 뿌까 머리위에 뜨는 전구를 탭해서 포인트도 쌓고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살림살이를 하나씩 늘리는 것,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전세계에서 알아주는 5성급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리라 꿈꾸게 하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다.
더없이 서민적이고 근면성실한 판타지랄까.
모름지기 게임이라 하면 마법의 검을 들고 불 뿜는 드래곤과 싸우거나 전투함대를 구축해 화려한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면 뭘 지으려면 도시 하나 정도는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무언가를 꿈꾸게 하고 해소시켜주는 게 게임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라면 말이다.
뿌까 레스토랑의 세계 안에선 내 가게 옆에 무지막지하게 들어서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도 없고, 목이 좋은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손님은 끝없이 들어오고, 영업만 계속하면 물가와 상관없이 음식 재료는 딸리지 않게 공급이 되고, 안하무인 고객'님'도 없으며 대출금도 권리금도 없다.
꿈꾸게 하고 무언가가 해소되는 판타지, 맞다.
이건 역으로 보면 전략전술 없이 근면성실하게 일하고 한푼두푼 모아서 내 영역을 넓히고 존경받는 위치까리 올라가는 일, 이것이 불 뿜는 드래곤과 싸우는 것만큼 황당무계하고 실현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시대라서, 이 게임이 지금 우리들 마음을 잡아끌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니, 급 서글프다.
아, 가벼워지려고 뿌까를 켰는데, 뿌까가 나에게 빅엿을 줬어.
ㅠㅠ
처음 가져온 원고의 엔딩이 쫀쫀하지 않길래
어떻게 바꿔야 할지 이야기해주면서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수다를 잠깐 떨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에 대해 알고 사랑한 거 아니잖아. 도서관에서 머리 쓸어 올리는 장면에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사랑을 유지하는 건 노력이지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아니야. <Kiss & Tell> 주인공이 상대에 대해 알려고 노력한 만큼 공감하거나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노력을 안 하게 된다는 함정도 있어. 죽도록 사랑해서 부모님 반대 무릅쓰고 결혼했어도 좀비커플이 될 수 있는 거야. SBS 다큐멘터리 <짝>을 보니까 그렇더라구."
후배에게 디렉션을 주면서 했던 말들이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에게 해줬어야 하는 말들이었다.
나는 연애를 하면 그 사람에 대해 최대한 깊이, 그리고 많이 알려고 노력했다. 옛날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고 "왜?"라는 질문을 참 많이 했었다.
너는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어, 너는 왜 이럴 땐 이렇게 반응해, 너는 왜 그 사람이 좋아, 너는 왜 그게 싫어, 너는 언제 가장 슬픈데 등등 끌채를 들고 뻘 속에 있는 뭔가를 찾으려고 긁어 내듯이 저 밑에 있는 것까지 참 궁금해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입체적으로 보게 되고, 이해하게 되니까 나는 그런 '취재'가 연애의 필수 코스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모르는 영역의 모습을 연인인 나만 안다는 느낌은 꽤 각별하기도 하니까. 나야말로 <Kiss & Tell>의 주인공처럼 상대방의 전기를 마음속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공감이 아니라 취재에 에너지를 더 많이 써놓고 그게 멋진 사랑인 줄 알았다.
그 방식을 바꿔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왜? 왜? 왜? 그만 묻고, 몰라도 그냥 받아들이는 노력을 좀 더 해야겠다.
처음 해보는 거라 잘 될까 모르겠지만..지금 나에게 필요한 변화인 것 같다. 무엇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런 식의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내가 물어볼 때마다 자기를 탐색하느라 힘들어하는 남자친구를 위해서 당분간 '왜'와 '얘기해줘'는 금지어 지정이다.
이전부터 은연중에 드러낸 특징이지만, 나는 '20대'라는 말에 유독 애착이 많다.
어릴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때문에 스무살이 된다는 것에 무지하게 의미부여를 하며 슬퍼했었고, <청춘스케치(Reality Bite)> 같은 영화를 보면서 기성 세대가 만든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는 20대가 멋스럽다고 생각도 했었다.
무작정 들이받고 보는 파괴 본능, 쌉싸래하고 풋내나고 유치하기도 한 감정 과잉,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이고 싶다는 환상. 요런 것들에 매혹된 20대 초반을 보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스물둘에 잡지사에 입사, 지금까지 기성 세대가 만든 초고도자본주의가 잘 굴러가도록 돕는데 일조하고 있다. (아, 약간 과장된 말투로 쓴 건데 써놓고 보니 어쨌든 속은 좀 쓰리다.)
타협이라면 타협이고 핑계라면 핑계인데, 그나마 <쎄씨>의 피처팀에서 쓰는 기사들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재미있게 일을 하고 있다.
<쎄씨>를 보는 독자들은 거의 대부분 20대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20대 곱씹어보기'를 계속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눈물><MBC 스페셜>을 기획 총괄하시는 정성후 CP님 같은 분의 20대 이야기를 들으며, 1980년대 '사회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가졌던 20대 대학생과 2011년 스스로를 '잉여 존재'라고 생각하며 죄송스러워하는 지금의 20대 대학생을 비교해보는 식으로 말이다. 정반대에서 출발한 감정이 '미안함'이라는 곳에서 만난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요즘 20대에게 취업이 절대화두이기 때문에, 취업 관련된 특집 기사를 거의 매달 쓰는데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건 20대를 향한 어른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다!'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장하준 교수가 책에서 밝힌 개념인데, 선진국이 개도국들을 위하는 척 하면서 그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 차 버렸다는 내용.
신입사원의 사회 입문의 기준을 말도 안되게 높여 놓더니, 이제는 스펙이 상향평준화 되었다며 '직무에 대한 열정, 기업에 대한 애정'을 증명하라고 한다.
그 요구 안에 설득되는 일말의 포인트가 있긴 하다. 애들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일에 재미를 느끼는지'조차 몰라 끙끙대니까, 자기 탐색을 통해 방향성을 잡아라 라고 코치할만 하다. 그런데 '자기 탐색'을 권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정규 교육의 공간이 있던가? 방황하는 청춘에게 '잘하고 있다'며 궁디팡팡 해주는 어른이 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과장, 차장 단 어른들은 신입 때 어땠는데? 스펙과 애정 열정을 모두 겸비한 훌륭한 인재여서 입사했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좋은 인재로 길러내는 것은 기업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 와중에 용케 자기 길을 정한 아이들이 있다는 게 신기한 일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 아이들은 대부분 '비정규, 마이너리그'의 공간이나 '자기만의 방'에서 그런 류의 정신적인 성장을 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방학이 되면 영화 비디오를 빌려볼 용돈을 따로 주셨고 고2때까지 야자 안하고 이틀에 한번꼴로 영화 보는 것을 허락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비교적 일찍 진로 탐색을 할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영화에 대한 글쓰기로 발전되었고, 다시 남들은 못 보는 의미를 발견해내 글로 쓰는 일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되어 잡지 기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과정 과정 소소한 터닝에는 머리 터지는 고민이 있었지만.
"니 인생 니 꺼다"라는 협박+해방의 말을 습관처럼 하셨던 부모님의 믿음 혹은 방치(?)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대로 대학교도 정하고 직업도 정해서 살고 있는 나는,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무척 놀랐다.
'왜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를 수 있을까?'
입사를 해서 수많은 20대를 만나고, 수많은 어른들이 20대에게 해주는 조언을 들으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공감하게 되었다.
20대에 대한 측은지심과 그들의 입장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베이스에 깔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요러요러 하니까, 니가 이러이렇게 노력을 좀 더 해!>라는 내용의 취업 기사를 쓸 때는 굉장히 미안하고 민망하고 머쓱한 기분에 빠져든다. 물론 그런 기사보다는 <부모님에게 착한 딸이고 싶다는 마음, 죄송스런 마음을 이기고 정신적인 졸업을 좀 하지 그래?>라는 식의 기사를 쓰려고 기획안도 그런 식으로 많이 내긴 하지만, 대세가 대세인지라 취업 정보 기사를 안쓸 수가 없다.
그 머쓱함 때문에 지금 새벽 3시에 블로그에 매달려 뭐라뭐라 씨부렁 거리는 거다. 애들한테 도움되라고 취재하고 쓴 건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그 도움이 도움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마감을 마치고 한 숨 자고 나면 별안간 내년이 다가와 있을 것 같아서
나의 스물아홉살이 어땠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 갖기로 했다.
스스로를 편하게 해주자는 마음이 컸던 한 해라 그런지, 올해는 '되새김질, 의미부여'를 지난 해들보다 확실히 덜 했다. 일기도 덜 쓰고, 블로그도 뜸했다.
예전에는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생겨나면 그게 뭔지 파악하기보다는 그 안에 흠뻑 빠져 느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감정이 지나가고 나면 깨달은 것도 많고 끼적댈 것도 많았다.
올해는 내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들에 대해 '나에게 이로운가?' 물음표를 달았다.
그래선지 큰 탈 없이 편안하게 흘러 여기까지 온 기분이면서 동시에 큰 이정표가 되는 사건도 없었던 것 같다. 어딘지 허전한 기분. 나중에 "스물아홉 때 뭐했어?"란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답을 하게 될까.
이런 게 현명하고 성숙해지는 건 줄 알았는데
심심한 어른으로 가는 길 위에 있던 건 아닌지, 갸우뚱하다. 잘 모르겠다. 어떤 게 현명한 건지, 그리고 어떤 게 나다운 건지.
<2010년에 하고 싶은 것>
- 서른을 마주하기 전, 1년 간의 준비 시간 갖기.
- 묘사 말고 서사로 20대를 정리해보기.
- 꾸준하게 무언가를 계속하기. 영어공부, 요가, 책 읽기 뭐든.
- 엄마아빠한테 전화 자주하기
- 새벽까지 서성대지 않기.
- 채소 많이 먹기.
- 나를 더 믿어주기. 글 쓰는 연습하기.
- 많이 걷기.
- 새록새록한 눈으로 세상보기. 내가 모르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하기.
- 편안함과 익숙함의 가치도 인정하기.
- 경험을 데이터베이스화 하기
- 의문나는 것들, 스치는 생각들 메모하기.
- 잡지에서 일하는 것의 의미 재정립하기.
- 옷장 정리하기.
- 시간에 쫓기지 말기.
올해 1월 1일 일기장에 적어둔 다짐이다. 이중에서 "그래, 잘 해냈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새벽까지 서성대지 않기'와 '편안함과 익숙함의 가치도 인정하기' 요 두 개.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20대가 이제 끝나가는데 이렇게 얼렁뚱땅 보내도 될까.
꼭 뭔가를 해야만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30대의 내가 갑자기 확 변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아쉽다.
남은 3주, 20대에게 안녕을 고하는 혼자만의 의식을 가져야겠다. 괜찮은 아이디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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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 modify / delete 2010/12/09 18:33 radioheadian
ㅎㅎㅎ 이크종이랑 술 먹는 게 '20대에게 안녕을 고하는 의식'이 되면 어쩌지? 이크종도 술먹으면서 서른살 됐다며. 나도 왠지 그럴 거 같아요. 어쨌든 먹읍시다!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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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갑자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12월 계약 만료시죠? 계약 연장하실 건가요?"
지금 살고 있는 방의 전세 계약 때문에 온 전화인데
부동산의 착각으로 한달 먼저 전화를 한 것이었고, 나는 얼결에 이 집에서 산지 벌써 일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지 이제 8년째인데
올해 초에 이사 온 이번 집에서는 그동안 즐겨하던 '야매' 클리닉 놀이를 안했던 것 같다. 벌써 일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게 좀 섭섭했다.
친구들은 지난 내 방을 SK클리닉이라고 불렀고,
상담료로 와인 한병 가져와서
진탕 취하거나, 찐하게 수다를 떨곤 했었다.
그 많은 이야길 했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 있을까?
왜 그 사람들과 나는 그냥 스쳐지나고 말았을까?
날씨가 추워서인지, 엉뚱한 전화 한 통에 싱숭생숭하다. SK클리닉 재오픈식이라도 열던지 해야지..
이런 시기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래왔다.
조급해진 마음으로 일하면서 스스로를 압박하지 않기를
외로움이 마음벽을 싸락싸락 쓸어댈 때 엄한 곳을 서성거리는 대신 불 끄고 눈 질끈 감고 잠잘 수 있길
쿨한 척하면서 속으로 눈치보는 대신 '나 질척한 사람이야'라고 까발리고 구성진 수다를 떠는 법을 알게 되길
나를 홀딱 들었다 놓는 쓰나미 같은 감정에만 의미부여하지 말고 잔잔하고 한결같은 감정도 감사하게 생각하길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나 그대로이길 바랐다.
물론 여전히 불쑥 불쑥 조급증, 불안함 등이 내 얼을 빼놓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스물 둘, 스물 셋의 나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평온해졌다.
째깍째깍 나를 스쳐가는 시간들을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믿어주는 마음으로 마주하고 보내주자는 결심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 의뭉스러운 물음표가 스물스물 세력을 키운다.
지금 이 상태가 '안일함'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상태가 아닐까 하는 물음.
평온한 것과 안일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맑은 눈이 나에게 있던가..?
'불확실성, 불안, 격정' 등에 충동적으로 끌리는 내 유아적인 기질이 괜시리 의심의 눈총을 보내는 건 아닌지
아니면
상태유지만 하려는 마음을 평온이라는 단어로 미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
간만에 생각병이 도졌다. 쯧.
'내가 그렇지 뭘' 하는 체념 비스무레한 감정과 '아직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감정이 섞여서 느껴지는 건 왜일까.
헛.
어쨌든 명백한 건 서른 되기 전에
내 삶의 캐치프레이즈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꼭 바빠 죽겠을 때 이러더라. 쉴 때 좀 생각하고 싶어지지, 내일까지 짜야되는 기사 콘티가 있는데 왜 하필 지금 생각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시험 전날, 책상 정리 하듯이.
군집공포증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도 방금 알았지만
얼른 이 소름끼치는 기분을 떨치기 위해 뭐라도 지껄여야겠다 싶다.
11월호 아이템을 준비해야 해서 조금 전 집 앞 카페에 와서 아이스라떼를 시켜놓고 열심히 워드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스라떼 테이크아웃 잔 바깥면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는데
컵에 빽빽하게 맺힌 물방울을 보고 소름이 쫙 끼쳤다. 30분이나 지났는데 여태 머리카락 뿌리 부분이 찌릿찌릿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반복되는 동그라미 무늬를 보면 소름이 끼치고 무섭고 그랬더랬다.
땡땡이 무늬 옷이나 타일 등 죽어있는 패턴은 괜찮고
생물책에서 세포 확대한 사진이나 바닷가 따개비, 거품 등 살아있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패턴만 그런 반응을 일으켰다.
그러려니 하다가 이게 무슨 현상일까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나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나보다. 군집공포증이라는 의학 용어까지 있는 걸 보니.
어릴 때 무서웠던 기억이 무의식에 박혀서 그런다는데
무슨 패턴이 날 그리도 무섭게 했을까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영상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
학교 뒤에 동물 사육장이 있었는데
거기 철조망 앞에서 공작새 구경을 했던 기억.
내 바로 앞에서 공작새가 갑자기 꼬리를 화악 펼쳐서 수백개의 눈이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다.
아휴. 소름끼쳐.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싫은 기억이다.
그때 나 혼자 구경하고 있어서 누군가에게 무섭다고 말도 못하고 삭혔는데, 이게 여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그렇다.
어떤 감정이든 그냥 삭히면 안되는 모양.
표현하기,는 아낄 필요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