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

from Playground 2011/12/21 22:27

입사 8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간접 목격하고 있는, '본격 조직 생태계 잔혹 느와르'.

편집부에 있을 땐 주말을 반납하고 주7일제로 일편단심 '제작'과 '마감'만 생각하면 되었지만

팀을 옮기고 나선 주5일제 주말이 확보된 대신 '만드는 일' 이외의 것들을 듣게 되고 알아야만 하게 바뀌었다.

회사원이 되기로 작정한 이상 일정부분 알아두고 유념해야 할 점들이지만,
그리고 사내 소식에도 밝아야 한다고 선배들께서 누누이 조언해주셨지만, 혹여나 회사원'만' 되어버릴까봐 두려운 마음이 스물스물 생겨나고 있었던 차였다.

어쨌든 나는, 광고인 줄리안 볼딩(Julian Boulding)이 했다는 말을 살짝 빌려 표현하자면,

"사실 우리는 맨날 똑같은 일만 하는 회계사 같은 건 지겨울 것 같아서 이 길을 선택한 광고인(잡지쟁이)" 니까.  


빈 공간을 찾아내는 눈

계속 하고 싶게 만드는 재미

신선한 삐딱함

순수한 동기

자발적인 몰입
...

이런 이야기나 자극이 필요하던 시점에
알약 하나
툭,
털어넣듯 보고 삼킬만한 동영상을 발견했다.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많이 설레어 하면서 살아야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2011/12/21 22:27 2011/12/21 22:27

Arcade Fire-Ready to Start

from Playground 2011/02/01 00:30



10시 정도 퇴근해서 일을 마저 해야지 싶어 노트북을 열었다. 잠깐 찾을 게 있어 유튜브에 들어갔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거의 두시간째 최근 가장 강렬하게 꽂힌 밴드인 Arcade Fire의 공연 실황 클립을 파도타기로 모조리 감상하고 있다. 일은 이미 내팽개쳐졌다.

10대 때 한메일에 가입하면서 처음으로 만든 인터넷 세상의 내 이름은 '라디오헤디언(RADIOHEADIAN)'이었다.

밴드 라디오헤드 이름을 따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낼 정도로 그들은 나에게 각별한 존재인데, 요즘 Arcade Fire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시절 생각이 난다.

이 캐나다 출신 밴드가 라디오헤드와 곧잘 비교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연 실황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무아지경의 표정'이 라디오헤드의 공연 모습과 상당히 비슷하다.

어떨 때는 웃음이 날 정도로 바보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오르가즘을 느끼는 표정 같아서 섹시하기도 한.

공연에 집중한 나머지 이따금 침도 흘리시는 라디오헤드 톰 요크의 '불판 위 오징어처럼 배배 꼬기 몸부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렇게 정신 놓고 공연하는 밴드를 보는 일은 즐겁다.


아, 락페 가고 싶다. 유튜브 너무 많이 봤어.


2011/02/01 00:30 2011/02/01 00:30

The Pretty Reckless

from Playground 2010/10/31 15:12

세달 전쯤
쥬이 디샤넬의 'She&Him'과 테일러 맘슨의 'The Pretty Reckless'를 묶어 기사를 썼던 적이 있다.
진짜 음악다운 음악을 하는 여배우에 대한 기사였는데
이 클립을 보기 전까지는
테일러 맘슨의 밴드 활동을 '여배우님 아티스트 놀이 하시나보다' 생각했었다.
노래도 제대로 들어보지 않고 쉽게 생각했던 것.
데이빗 보위와 피트 욘까지 힘을 더해주었으나, 대박 망해버린 스칼렛 요한슨의 앨범이 주홍글씨처럼 실망감을 남겨서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이 클립을 발견하고
테일러 맘슨에게 홀딱 반했다.

어릴 때 좋아했던 만화책 <나나>의 '카리스마 나나'.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좋아하고, 늘 찢어진 망사 스타킹에 래더 재킷을 입고 다니던 그 주인공 같다.

헤비한 록 사운드를 비주얼적으로도 만족시켜주는 여자 록커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그 갈증을 기대치 않게 이 어린 여배우가 채워준 느낌이다. 개러지 록 밴드 ‘가비지’의 보컬 셜리 맨슨이나 코트리 러브의 망아지 같은 이미지. 블랙 아이라인을 두껍게 칠하고, 블랙 브라와 레이스 스타킹으로 펑크한 매력을 발산하는 여자 록커가 얼마만에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일주일 전쯤 배달된 The Pretty Reckless의 신보 <Light Me Up>를 듣기 시작하는데, 역시 마음에 든다.

2010/10/31 15:12 2010/10/31 15:12

이번 달 고사 직전인 해외 뮤지션의 공연실황 DVD 시장에 대한 짧은 기사가 있어서
취재 중에 엠넷의 피디에게서 이 클립을 추천 받았다.
이렇게 간결하고 명확하게 음악을 비주얼로 표현하다니, 정말 마이클 잭슨은 천재다.
그가 살아있을 때 진가를 이해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난 마이클 잭슨을 오해하기 가장 쉬운 세대였다.
이것에 대한 생각은 몇개월 전에 기사로 쓴 게 있으니..

2009.08.ceci

 

2010/03/08 03:09 2010/03/08 03:09

밴드 음악이 지겹게 느껴질 때
들어본 적이 없는 음반인데도, 록 밴드 음악이라는 걸 아는 순간 호기심이 달아날 때
'진짜 새로운 음악 없을까' 갈증이 난다.
요즘 딱 그런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을 만났다.

아이슬란드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아르날즈의 고향이라는 아이슬란드 공기가 어떤 촉감일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1987년생.
클래시컬 컴포저, 퍼포머.
'클래시컬한 악기들을 인디락의 미적 감각과 결합' 시켰다는데,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맨날 듣던 비발디가 현대로 와서 넘치는 호기심을 자제하고, 진지한 자세로 외로움에 푹 빠져들면 이런 음악을 만들 것도 같다.

위에 링크시킨 곡은 <Eulogy for Evolution>의 끝에서 두번째 있는 트랙 '3326'. 마지막에 툭 끊겨버리는 이유는 마지막 트랙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트랙 '3704/3837'에는 폭발적인 록 사운드가 튀어나온다. 참 희한한 앨범이다. * 올라퍼 아르날즈 마이스페이스 (www.myspace.com/olafurarnalds)




#
Eels는 테이프 사서 음악 듣던 고등학교 시절, 엄청나게 많이 들었던 뮤지션이다.
첫번째 앨범 <Beautiful Freak>에 있던 'Novocaine for the soul' 때문에 마취제를 영어로 어떻게 부르는지 알게 되었고, 두번째 앨범 <Electro-Shock Blues>는 너무 좋아서 언니한테 들려줬다가 "이렇게 우울한 음악 좀 그만 들어"라고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던 'E(마크 올리버 에버릿)'가 직접 그린 앨범 커버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도 나고.
세번째 앨범 <Daisies Of The Galaxy>까지 사서 듣다가, 이제 그만 들어도 되겠다 싶어서 그 뒤론 EELS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쨌든 당시엔 밴드였는데 이제 'E'의 원맨 밴드가 된 EELS가 새 앨범 <HOMBRE LOBO>를 내서
요즘 좀 좋다.
Mr.E도 이제 좀 평온해졌나보다.
예전 음반들보다는 덜 날카롭고, 가사도 착해졌다.
턱수염은 10년동안 한번도 안 자른 것 같고.


'Cancer For The Cure' - from <Electro-Shock Blues>(1998)



'That Look You Give That Guy' - from <HOMBRE LOBO>(2009)


#
루시드 폴은 모두가 좋다할 때는 심드렁하다가 뒤늦게 빠진 뮤지션이다.
고등학교 때 음악 나눠 듣던 친구가 루시드 폴이 속해있던 밴드 '미선이'를 좋아했었다. 그때 맛만 보고 내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저 멀리 치워뒀었다.
별 생각 없이 이번 앨범 <레미제라블>의 '레미제라블 Part 1,2'를 듣다 완전 울고
사심을 채우기 위해, 이번 달 간단한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한다.

1월 1일, 오늘 듣기 참 어울리는 곡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라는 가사가 찌릿찌릿 마음에 와 닿는다.


2010/01/01 14:19 2010/01/01 14:19


내일 그랜드민트페스티발에 갈 예정이라
라인업을 살펴보느라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이름이 생소한 밴드들은 어떤 노래하는 밴드인지 들어보려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엄하게도 일요일 라인업인 언니네이발관과 아마도이자람밴드에 새삼스럽게 꽂혀서 무한반복 청취 중이다.
이번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는 앨범 두장이나 구입했는데, 씨디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어디 끼워 있는지 당최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한동안 못 듣고 있었다.

아휴. 좋아.
창문 열고 들으면 진짜 최고.





생선님이 드럼치는 '아마도이자람밴드' 노래도 넘 좋다. 생선을 처음 알게 됐을 때만 해도 아마도이자람밴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는데..몇년만에 페스티발마다 빠지지 않는 밴드가 되었다. 좋아서 열심히 하면 결국 잘 하게 된다는 걸 보여주었달까. 어쨌든 내일 강수확률 0%에, 바람도 선선할 듯 하니, GMF 다녀오면 기분 좋아지겠지?





2009/10/24 00:50 2009/10/24 00:50

오지은

from Playground 2009/08/02 22:59

올해 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오지은을 처음 보았을 때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찌릿찌릿, 찌릿찌릿.
방송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집에서 녹음해 만들었다는 1집을 주문했었다. 몇 달전에 1,2집을 돌려가며 한참 많이 듣다 오늘 오랜만에 다시 1집을 들었는데, 아, 좋다. 정말.



아래 동영상은 그녀가 몇년 전 자기 홈피에 올린 '골방 라이브' 시리즈 중 하나. 이걸 본 네티즌들이 제작비를 대주어서 1집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밑에 있는 동영상은 나에게 찌릿찌릿한 기분을 선사했던 노래 '푸름'.





그리고 이건 요즘 젤 좋아하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2009/08/02 22:59 2009/08/02 22:59
  1. 안가르쳐줍니다. 2009/10/19 10: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지은 가사를 참 잘 쓰더라구요.
    저는 2집에 웨딩송, 인생론이 좋아요:) 손발이 좀 오그라들긴 하지만 ㅎㅎ

돌발쥐어짜기

from Playground 2009/05/26 00:09

언론노조 홈피에서 퍼온 동영상.
초반에는 그냥 별 감흥없이 봤는데 마지막 1분 이후 '빵' 터진다.
아, 웃겨. 며칠만에 처음으로 깔깔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 안에 이런 '폭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윤성호 감독 블로그에서 보게 된, <지식e채널-광우병 편>의 김진혁 PD가 만든 '그건 아니니까' 는 뭐랄까..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
올바른 곳에서 올바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헐적으로 나를 흔든다.
어쩌자고 이렇게 커다란 이야기가 마음 속에 쑥 들어왔는지.
마감 소용돌이에 빠지면 아마 아무 생각을 못하겠지 싶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이 계속 내 팔을 붙들고 놓치 않는다면 그건 '진짜'라는 신호이니 우선은 관망 중이다.

얼마 전, 나름 고민하며 던졌던 출사표는 잠시 보류다.
오늘 알게 된 건데 나는 나와 다른 성향과 생각을 가진 직장 동료조차도 품을 수 없었다.
화해는 조금 뒤에, 우선은 let it flow. 한심한 건 한심한 거다.




2009/05/26 00:09 2009/05/26 00:09

이희복 the sky

from Playground 2008/05/07 16:52


from
www.heeboklee.com

작년 이맘때 <비주얼 마에스트로>라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알게 된 희복님. <슈퍼맨 리턴즈><스파이더맨3><스피드레이서> 오프닝 타이틀 작업과 같은 거창한 일들도 많이 하시는데, 나는 그의 여러 작품 중 그가 대학시절 만든 이 <The Sky>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모든 단어들이 전력투구하는 느낌. 인터뷰 당시 <아이언맨>을 한창 작업 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든 회사에서 이동 시간이 아깝다며 호텔방까지 잡아줄만큼 바쁜 시기였다는데, 무척 성실히 답변을 보내주어서 감동했던 기억도 있다. 나중에 나와 주고받은 이메일 전부를 통째로 'SADI 매거진'에 전달해서(아마 똑같은 질문에 두번 답하기 싫으셨던 거겠지..하지만! 나의 사소한 말투까지 고스란히 다른 잡지가 그에게 던진 질문인양 인쇄되어 나간 건 정말 불쾌했었다.) 막판에 살짝 빈정상했었지만. 어쨌든. 마감하기 싫을 땐, 이 모션그래픽을 무한 반복으로 돌려보곤 한다.
2008/05/07 16:52 2008/05/07 16:52

  • “남들은 그이가 위대한 예술가라고 말하지만 내겐 그저 커다란 아기(big baby)였죠.”

    지난해 74세를 일기로 타계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白南準)씨의 반려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70) 여사가 오는 29일로 다가온 남편의 1주기를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27일 서울에 온다. 서울 봉은사에서 열리는 추모식에 참석하고, 지인들과 만나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백남준 기념관을 방문할 계획이다. 21일, 22일 두 차례에 걸쳐 뉴욕 맨해튼 소호에 있는 자택에서 본지와 통화한 구보타씨는 “평생 싸웠지만 정말 사랑했다”며 “남편이 떠난 지 1년이 됐지만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걸 나는 분명히 안다”고 했다.

    ―지난 1년 어떻게 지냈습니까?

    “96년 그가 쓰러진 뒤 10년 동안 나는 사생활이 없었어요. 늘 집에 간병인이 있었고, 할 일이 많았어요. 병원도 모시고 가야 하고, 의사도 만나야 하고, 운동도 도와야 하고…. 10년 만에 생긴 자유시간으로, 나는 그이를 찍은 비디오를 봐요. 그가 살아있을 때 나는 일기 쓰듯 비디오를 찍었어요. 우리 집엔 나와 남편이 서로를 찍은 비디오가 2만7300개 있어요. 아예 ‘자동 반복’ 기능을 설정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하루 몇 시간씩 봐요. 보면서 안 우냐고요? 왜 안 울어요? 울고, 웃고, 화내고, 말 걸고, 별 일 다하죠. 그이 목소리 들으면서 잠 들고 깨요. 그는 살아있을 때 내가 외출할 때마다 ‘어디 가?’ ‘언제 와?’ 물어봤어요. 그가 간 뒤에도 나는 집 밖에 나갈 때마다 ‘남준, 나 장 보러 간다’ 이래요. 돌아오면 ‘나 왔어, 기다렸지?’ 하죠.”

    ―대답이 있던가요?

    “그이는 늘 내 곁에 있어요. 우리 집에 그가 13세 때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한 CD가 있어요. 난 그게 제일 좋아요. 들으면 그가 옆에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져요. 독일 방송국이랑 인터뷰한 걸 녹화한 비디오가 있는데, 들을 때마다 그가 얼마나 똑똑하고 멋있는 남자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첫눈에 ‘아, 정말 잘생겼다’ 내가 ‘욘사마 열풍’ 1호였나봐

    생전 그의 모습 비디오 늘 틀어놓고 울고 웃고 말도 걸고…

  • 두 사람은 1963년 도쿄에서 처음 만나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연애했다. 70년 백남준씨가 캘리포니아 예술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교편을 잡기 위해 뉴욕을 떠날 때 구보타씨가 “당신 없는 뉴욕에 못 산다”며 따라 나섰다. 둘은 7년간 함께 살다 결혼식을 올렸다.

    ―그가 왜 그렇게 좋았습니까?

    “요즘 일본 여자들이 욘사마(배용준)처럼 멋진 한국 배우들 좋아하지요? 내가 1호였나봐. 딱 보고 ‘아, 정말 잘생겼다, 멋지고 똑똑한 남자다!’ 했어요. 그가 유명해서 사랑한 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한 60년대의 백남준은 가난하고, 무명이었어요. 전위예술가 사이에서만 유명했죠.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몰락해서 유산도 없고, 부모도 돌아가셔서 안 계셨어요. 시댁, 없으면 외롭지만 있으면 골칫거리도 많이 생기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대뜸 ‘당신, 이 세상에 혼자냐’고 묻자, 그가 ‘그래, 나 혼자야’ 했어요. 나는 ‘오, 좋아!’ 했죠. 뉴욕에서 힘들었어요. 그는 침대가 없어서 마루에서 자는 처지에 ‘작품 하려면 TV 100대를 사야한다’고 하는 남자였어요. 77년 독일 뒤셀도르프 미대에 비디오 아트 과목 강사 자리를 얻을 때까지, 그는 일자리가 없었어요. 내가 뉴욕에 있는 일본인 학교에서 일해서 둘이 먹고 살았죠. 돈 때문에 많이 싸웠어요. 또, 그가 가끔 ‘나, 내 마누라가 오노 요코처럼 유명한 여자 예술가였으면 좋겠어’ 했어요. 그럼 나는 ‘뭐라고!’ 하고 막 화를 냈지요. 나도 비디오 아트를 한 작가지만, 그는 유명하고, 난 아니죠. 그에게 ‘난 유명해질 필요 없는 사람이야. 그저 좋은 예술가가 되길 바라는 사람이야’ 했어요.”

    돈 때문에 많이 싸웠어요 ‘내 아내가 오노 요코처럼 유명한 예술가면 좋겠어’

    가끔씩 그러면 전 막 화를 냈죠

    ―개인 백남준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소녀처럼 깔깔 웃고) 스마트하고 달콤하고 재미있고 섹스를 잘하는 남자였어요.”

    ―다정했습니까?

    “96년 쓰러지고 나서 2001년에 그가 내게 편지를 보냈어요. ‘시게코, 넌 젊어선 멋진 애인이었고, 늙어선 최고의 엄마이자 부처가 됐어’라고 했어요. 그걸 읽고 내가 깔깔 웃으면서 ‘남준, 당신 정말 웃겨요. 불교도도 아니면서’ 하고 놀렸죠. 그 편지, 늘 가지고 다녀요. 자주 꺼내보죠.”

    ―지난 1년간 언제 가장 힘들었나요?

    “그이가 더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할 때. (그녀는 잠깐 침묵했다.) 그의 가족은 모두 당뇨를 앓았어요. 그도 47살에 당뇨 진단을 받았죠. 병세가 악화되지 않게 조절했어야 하는데, 그는 그걸 잘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무리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도 늘 주머니에 단 걸 갖고 다니며 아이처럼 먹었죠. 나는 일본 니가타에서 자랐어요. 친정은 화목한 대가족에, 중산층이고, 장수 가족이에요. 부모님은 모두 교사였죠. 어머니는 100세이시고, 피아니스트인 언니랑 여동생도 살아있어요. 그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슬픔을 졸업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언젠가 졸업하긴 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어요.”

    구보타씨는 “우리 부부는 자주 서울에 갔지만 한번도 한국에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여행자처럼, 집시처럼 살았지만 남편의 나라 한국이 좋다”고도 했다.

    “그는 무가(巫歌)를 좋아했어요. 그가 죽은 뒤 뉴욕 한인타운에 가서 무속음악CD를 사다 들었어요. 그가 왜 좋아했는지 알았어요. 굉장히 영적인 음악이에요.”

    그는 유명한 남성 작가와 산 무명 여성 작가였다. 남편과 함께, 혹은 따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지만 1997년을 마지막으로 남편을 간병하느라 더는 개인전을 열지 못했다. 오는 9월 뉴욕에서 여는 개인전은 10년만에 ‘아내’ 구보타에서 ‘작가’ 구보타로 돌아오는 자리다. 그는 “나는 야심적인 여자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도쿄에서 고교 교사를 했을 거예요. 그를 만나서 정말 재밌고 행복했어요. 그는 평생 어려서 죽은 누이를 애틋하게 그리워했어요. 우리는 부부였지만, 동시에 오누이같았어요. 가난하던 시절, 한번은 그에게 ‘나같은 평범한 일본 중산층 집 딸 말고, 전시회 척척 열어주는 부잣집 딸이랑 결혼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가 딱 한마디 했어요. ‘그런 여자 건방져서 싫어.’ 우리, 40년간 굉장히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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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감 중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읽게된 기사. 목울대 언저리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했다.

2008/04/12 17:57 2008/04/12 17:57